말씀 요약
아브라함Abraham의 아들은 이사악Isaac입니다. (토스트 체인점 ‘이삭 토스트 Isaac Toast’ 간판에 표기된 그 이름입니다)
이사악Isaac이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 레베카Rebeca라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불행히도 레베카는 불임 여성이었습니다.
이사악이 주님께 기도를 힘겹게 올리자, 하느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어 레베카는 임신하게 됩니다. 레베카의 태중에는 쌍둥이가 잉태되었습니다. 이 때가 이사악의 나이는 60세였다고 하니 무려 20년간 기도를 한 것입니다.
어머니 배 속에서 두 아이는 부딪치며 성장했습니다. 하느님은 레베카의 태중에 두 나라가 있다고 알려줍니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라는 것도 알려줍니다.
먼저 세상에 나온 형은 붉은색 피부에 온 몸이 털투성이라서 이름을 ‘에사우(Esau: Hairy)’라 지었고, 뒤따라 나온 동생은 형의 발뒤꿈치를 꽉 붙잡고 있어서 ‘야곱(Jacob: Heel)’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형인 에사우Esau는 밖으로 돌아다니는 타고난 사냥꾼으로 성장했고, 동생인 야곱 Jacob은 주로 실내(텐트 안)에서 생활했습니다. 아버지 이사악은 (사냥) 게임을 잘하는 첫아들인 에사우를 사랑하였고, 아내인 레베카는 온순하게 보이는 동생인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어느날 야곱Jacob이 스프를 끓이고 있을 때, 에사우Esau가 허기진 채 밖에서 돌아와 야곱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먹을 것을 앞에 놓고 야곱은 형인 에사우와 흥정을 합니다. 형이 가지고 있는 ‘맏아들 권리’를 동생인 자기에게 팔라고 요구합니다.


심하게 허기가졌던 에사우는 ‘배고파 죽게 생겼는데, 장자의 권리 따위가 뭐 그리 대수인가?’ 라고 말하며, 자신의 위치에 대한 의미도 모른 채, 기껏 배고픔을 달래고자 빵과 렌틸 죽 한그릇과 ‘맏아들 권리’를 맞바꾸어 동생에게 팔아버린 후, 그 음식을 먹고 마시고 밖으로 나갑니다.
묵상과 적용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각자의 역할이 있고 위치가 있습니다. 자녀에서 부모로, 학생에서 청소년을 거쳐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사회인으로서의 역할 등 때에 맞추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각자의 역할과 위치에는 적든 크든 일정 수준의 의무와 책임이 항상 따라옵니다.
기업체의 고위급 임원에게 인사권과 통제권, 예산 운영권, 사택과 비서와 고급 차량 등을 제공하는 것은 그 위치에 걸맞게 다른 사소한 일에는 신경쓰지 말고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라는 회사 최고의사결정권자인 CEO가 던지고 있는 무언의 메시지 입니다.
위 복음 말씀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맏아들의 역할은 막중했고, 권한도 상당했습니다. 부모가 사망할 경우, 맏아들은 유산의 2/3를 물려받게 되고, 차남 등 나머지 아들들은 1/3의 유산만 상속받는 사회였습니다.
유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리더십입니다. 어머니가 살아있더라도 가정의 주요 의사결정은 맏아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어머니는 조언자일 뿐 입니다. 당시에는 남성 중심사회였기에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가정일 경우, 가족 예배를 주관해야 하는 정신적 리더(The Spiritual Leader)역할도 ‘맏아들’ 만이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살다보면 의식주 마저 해결이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으로 궁핍한 환경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하루에 라면 하나로 생활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 버립니다. 왜 태어났는 지,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끔찍한 말도 있습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체면이고 뭐고 따질 겨를이 없이 먹거리 때문에 각종 범죄를 저질러 요즘으로 치면 경찰서(포도청)에 수감된다는 격언입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사우Esau는 배고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요즘으로 치면 팥죽 한그릇과 바게트 빵 하나 정도 밖에 안되는 음식을 얻어 먹기 위해 자신에게 부여된 천부적인 권리를 동생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동생인 야곱(Jacob)도 상당히 심한 행동을 했습니다. 배고픈 형을 위해 음식을 대가없이 제공하면 될 상황인데, 배고픈 사람의 처지를 이용하여 뭔가 거래를 한다는 것이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교 집안이든 무슬림이든 지금의 중동지역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정 내에서 맏아들의 권한은 상당히 막강합니다. 야곱 입장에서는 둘째 아들의 서러움을 원천적으로 없애고자 하는 욕망이 충분히 있었을 것 같습니다.
에사우는 눈 앞에 보이는 오늘의 현실과 이익과 욕망에 충실했습니다. 야곱은 보이지 않는 것과 미래의 삶을 추구했고 정신적인 유산을 원했습니다.
그 결과 에사우는 본인에게 주어진 좋은 권리마저 스스로 잃어버리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에 반해 야곱은 훗날 12 지역을 이끄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수 십개 구청을 관할하는 특별시장, 혹은 광역시도 자치단체장 정도의 위치까지 올랐습니다.
에사우에서 배울 점은, 삶이 힘들다고 목전에 있는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조금은 배가 고파도 영혼이 넉넉한 삶을 사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아서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야곱의 행동에서 개인적으로 배울 점은 배고픈 사람과 흥정하지 말라는 점입니다. 성경에서는 좋은 지 나쁜 지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만, 아무리 사회적 위치가 서럽다 하더라도 저 같은 경우는 배고픔 사람과는 흥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야곱은 야곱대로 당시에 하느님이 부여한 뭔가 할 일이 있었을 것이고(*12 부족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역할 수행), 저는 저대로 오늘 이 시대에 하느님이 바라는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느님, 아무리 배가 고프고 상황이 어렵더라도 저에게 주어진 특정한 역할을 망각하고 포기하지 않도록 저에게 지혜를 주시고, 오늘 하루 저에게 주어진 역할에도 충실하도록 모든 것을 허락하시고 보살펴 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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