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력이 아닙니다.
‘마음’의 두 가지 길
신체의 감각 기능 덕분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세상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감각 작용을 6가지의 근본적인 ‘감각’과 그것이 표출되는 ‘경계선’, 그리고 상호 반대되는 측면(즉, 근본적으로 ‘장애’가 없는 경우와 장애가 있는 경우)에서 일어나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지식’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물음이 하나 생기게 됩니다. “감각 기관에 ‘장애’가 장애가 없다는 것이 단순히 건강하다는 뜻일까요?”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장애는 신체 기관의 손상이 아니라, ‘집착과 분별심’ 이라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오염’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애의 결과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신체 기관의 결함이 아니라 ‘집착” 이기 때문입니다.
눈이 아무리 밝아도 (시력이 아무리 좋아도) 집착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장애가 있는 것’이고, 반대로 육체적 결함이 있더라도 마음이 자유롭다면 그것은 ‘장애가 없는 상태’ 라고 합니다.
마음에 장애가 없을 때 드러나는 것을 지혜(智慧)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혜가 구체적으로 삶 속에서는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 즉 마음에 장애가 있을 때 드러나는 것은 집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아래의 여섯 개의 감각의 문과 마지막에 놓이게 될 마음의 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각각의 문에서 장애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사랑’과 ‘집착’이라는 이름으로 삶에 나타나는지 정리를 해 보려고 합니다.
특히 이 글에서 가장 마지막 항목인 마음(意根) 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왜냐면, 모든 감각의 문은 결국 마음으로 모아지고, 마음의 상태에 따라 같은 대상도 사랑이 되기도 하고 집착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의 마음에는 장애가 있는가, 없는가?”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기도 합니다.

(눈) 보는 것의 두 얼굴
눈에 장애가 있으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실상)을 보지 못한다 (원문: 眼有障 안유장 則 칙 不見實相 불견실상). 그러나 눈에 장애가 없으면 바른 시각(正見)이 드러난다. (원문: 眼無障 안무장 則 칙 顯正見 현정견).
보는 눈에 장애 없을 때, 비로소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람 관계에서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볼 때, 거기에 판단과 왜곡이 없을 때, 비로소 사람과의 진실 된 관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보는 눈에 장애가 있을 때, 세상을 왜곡된 렌즈로 접하게 됩니다. 두려움이나 욕망의 대상으로 상대를 볼 때, 실제 모습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그리고 기대하고 있는 미래의 이미지를 봅니다. 오늘 현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눈에 장애가 없으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봅니다. 상대를 해석하지 않습니다. 눈에 장애가 있으면, 내가 보고 싶은 대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마음대로 해석합니다.”
(귀) 듣는 것의 두 얼굴
귀에 장애가 있으면 소리에 집착하여 본질을 듣지 못한다 (원문: 耳有障 이유장 則 칙 執音聲 집음성)
귀에 장애가 없으면 있는 그대로의 소리[진리]를 듣는다. (원문: 耳無障 이무장 則 칙 聞實相 문실상)
상대방의 말을 집착 없이 들을 때, 상대방의 말을 진실하게 듣게 됩니다. 들려오는 말 너머에 담긴 감정 상태와 진심(속마음)까지 듣게 됩니다. 그래서 집착 없이 들을 때에는 ‘상호 공감’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들으면서도 장애가 있을 때에는 선택적 혹은 방어적 듣기 태세로 돌입합니다. 이미 정해 놓은 답이 있을 때, 상대방의 말을 듣고는 있는 것 같지만 온전히 듣지 못합니다.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듣게 되고, 또한 그렇게 들려옵니다.
“귀에 장애가 없으면 상대방의 말을 듣습니다. 귀에 장애가 있으면 내 대답만 준비합니다.”
(코) 맡는 것의 두 얼굴
코에 장애가 있으면 냄새를 싫어하거나 탐을 낸다 (원문: 鼻有障 비유장 則 칙 厭惡貪香 염오탐향)
코에 장애가 없으면 냄새를 맡되 청정한 후각[집착 없음]이 일어난다. (원문: 鼻無障 비무장 則 칙 嗅清淨 후청정
냄새를 맡되, 좋고 싫음에 휘둘리지 않을 때, ‘그 냄새’가 지닌 속성을 담백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향기에 특별히 집착하거나 반대로 혐오할 때, 오히려 그 감각이 나를 속박하게 됩니다. 다른 좋은 향기도 많은데, 오로지 한 두 가지 좋아하는 향에만 매달리는 구속 아닌 구속 생활을 하게 됩니다.
“코에 장애가 없으면 그 냄새를 단순히 맡고 지나간다. 코에 장애가 있으면 그 향기에 갇히게 됩니다.”
(혀) 맛보는 것의 두 얼굴
혀에 장애가 있으면 좋은 맛만 추구한다. (원문: 舌有障 설유장 則 칙 求美味 구미미)
혀에 장애가 없으면 맛의 본질[단맛·짠맛 너머]을 안다. (원문: 舌無障 설무장 則 칙 知味性 지미성)
내가 맛을 알되 집착하지 않을 때, 나는 한 입의 밥에서도 감사함을 느낍니다. 균형 잡힌 먹거리를 찾으며, 가지 수가 많지 않은 단촐한 음식에도 감사하게 됩니다.
내가 계속 더 좋은 맛을 찾을 때, 나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음식, 신기한 음식, 남들이 먹지 못한 음식을 갈망하며, 남들보다 더 좋은 음식, 더욱 화려한 음식 만을 찾기에 어떤 좋은 음식을 먹어도 현재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혀에 장애가 없으면 ‘맛’ 자체를 느끼고 감사합니다. 혀에 장애가 있으면 계속 더 나은 맛을 갈망합니다.”
(몸) 느끼는 것의 두 얼굴
몸에 장애가 있으면 편한 감촉은 구하고 불편한 것은 피한다. (원문: 身有障 신유장 則 칙 求順避逆 구순피역)
몸에 장애가 없으면 감촉을 느끼되 머물지 않는다. (원문: 身無障 신무장 則 칙 觸無住 촉무주)
몸의 촉각이 편안함과 불편함 모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쾌락을 계속해서 쫓거나 고통을 피해 도망가지 않습니다. 쾌락이 지속되지 않아도, 고통이 지속되어도 있는 그대로의 몸 상태를 받아들이기에 자유롭습니다.
편안함을 주는 감각에 만 집착하고 불편함을 가져다 주는 감각을 두려워할 때, 끊임없는 육체적 쾌락과 더 강한 쾌감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고통을 회피하기에 늘 어디 다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 속에 삽니다.
“몸에 장애가 없으면 있는 그대로 느끼고 자유롭게 놓아준다. 몸에 장애가 있으면 쾌락을 붙잡고 고통은 밀어낸다.”
(마음) 생각하는 것의 두 얼굴
마음에 장애가 있으면 망상이 일어난다. (원문: 意有障 의유장 則 칙 生妄想 생망상)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지혜가 드러난다. (원문: 意無障 의무장 則 칙 顯智慧 현지혜)
지혜가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될 때, 그것은 사랑의 형태를 취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건 없이 베풀며, 소유하려 하지 않는 그 마음. 이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집착하지 않으므로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자비로운 사랑입니다.
망상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될 때, 그것은 집착의 형태를 취합니다.
상대를 욕망의 대상, 육체적 쾌락의 대상으로 만 생각하게 만들고, 조건을 따지며, (외부조건이 유지되면) 마음이 망가져도 놓지 못하는 그 마음. 기대하고 있던 조건이 완전히 사라지면 낡은 신발 취급을 하는 등 조건의 충족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마음의 상태. 이것이 우리가 때때로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의 정체입니다.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사랑합니다. 마음에 장애가 있으면 집착합니다.”
사랑(Love) vs 집착(Attachment)
삶에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 과연 어디까지가 진짜 ‘사랑‘이고 어디서부터 ‘집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구 분 (Category) | 장애 없는 마음의 결과: 사랑 | 장애 있는 마음의 결과: 집착 |
|---|---|---|
| 조 건 | 무조건적 | 조건적 (“네가 나를 이렇게 해주면”) |
| 소 유 | 자유를 인정하고 허락함 | 소유하려 함 |
| 두려움 | 잃음에 대한 두려움 없음 | 잃을까 두려움 |
| 반 응 | 상대의 행복을 기쁨으로 여김 | 상대가 내 기대에 맞길 바람 |
| 고 통 | 함께 아파하되 집착하지 않음 | 상대가 떠나면 무너짐 |
| 智慧 (지혜) + 慈悲 (자비) | 妄想 (망상) + 執着 (집착) |
“사랑은 상대를 자유롭게 한다. 집착은 상대를 가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집착은 나 자신도 가둔다.”는 것 입니다.
선택을 향하여
장애는 신체 기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누군가를 바라 볼 때, 들을 때, 느낄 때, 생각할 때 – 그 순간마다 우리는 선택하게 됩니다. 집착의 길로 갈 것인가, 사랑의 길로 갈 것인가 결정해야 합니다.
첫째, 모든 감각은 그 자체로는 맑습니다. 문제는 그 감각에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그림자를 덧씌우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둘째, 사랑과 집착은 겉으로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둘 다 ‘상대를 향한 강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둘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는 상대를 자유롭게 하고, 다른 하나는 상대를 가두게 됩니다. 또한, 하나는 나를 자유롭게 하고, 다른 하나는 나를 가두게 됩니다.
셋째, 집착은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잃을까 봐, 상대방이 나를 떠날까 봐, 더 세게 붙잡습니다. 그러나 붙잡을수록 상대는 멀어지고 나는 더 외로워집니다.
넷째, 사랑은 용기에서 나옵니다. 놓아줄 용기, 신뢰할 용기, 상대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나의 행복으로 여길 용기. 이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홀로 있을 때라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 어떤 상황, 어떤 사물을 자기가 상상하는 대로가 아니라 실제로 있는 그대로 본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에 대한 반응을 해 주는 것, 그게 사랑입니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보는 것에 장애가 없도록 홀로 있어야 하고, 보는 것을 훈련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5천 명 이상을 식사하도록 조치를 취한 한바탕 소통 뒤에는 제자들을 해변가 보트로 보내고, 물리친 다음에 홀로 산에 올라가 기도하며 저녁에도 그 곳에 홀로 있었습니다. (“Then he made the disciples get into the boat and precede him to the other side, while he dismissed the crowds. After doing so, he went up on the mountain by himself to pray. When it was evening he was there alone.”, 마태복음서 Matthew 14, 22-23 NABRE)
우리의 개념들, 우리의 범주들과 편견들, 우리를 투영하는 어떤 미래의 모습들, 우리의 문화들과 과거 경험에서 끌어온 것들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을 방해하는 상처 후 아문 딱지와 같은 것이다.
인간의 뇌가 뭔가를 판단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시각 입니다. 보는 것이 제일 힘듭니다. 제대로 보려면 현재의 모습 그대로를 생생하고, 면밀하고, 세심하게, 살짝 반발짝 정도 떨어져서 오랜 동안 관찰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과정이 너무 힘들기에 사람들은 대충 봅니다. 그리고 마음대로 결론을 내립니다. 앞에 보이는 대상의 본질을 제대로 모르면서 평가하고, 토론하고, 느끼는 이미지로 최종 결론을 내립니다.
지금 나는 제대로 보고 있는가? 제대로 들으려 하는가? 제대로 냄새를 맏고, 제대로 맛을 보고, 제대로 느껴 보려고 하는가? 내 안에 있는 마음은 장애가 있는 집착인가? 아니면 장애가 없는 사랑인가?
앞으로 이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남은 시간 동안 해야 하는 신앙 생활의 화두가 될 것 같습니다.
참고 문헌 Bibliography
- 앤소니 드 멜로 Anthony de Mello 지음, 김상준 옮김, ‘적절한 표상들’ in <깨어나십시오 Awareness>, Page 223-226, 서울, 분도출판사(2024)
- Pāramiti 파라미티,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의 상호 작용,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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