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이스라엘인들의 종살이 Jacob’s Descendants in Egypt
이집트에 살았던 야곱의 후손들
야곱과 요셉은 모두 사망했지만, 그들의 자손들은 계속 번성하여 세대의 총 숫자가 70명에 달했습니다. 이집트에 이민 와서 정착한 이스라엘 민족도 갈 수록 번성했습니다.
히브리 인구의 증가는 이집트에 새로 부임한 왕이 보기에는 대규모 반란이나, 전쟁 발생시에 위협적인 요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Pithom, ‘House of Atum” (also called Etham), was located in the Wadi Tumilat to the east of the Nile Delta. (피톰 Pithom, 즉 ‘아툼의 집’-‘에탐’으로도 부름- 은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 동쪽의 ‘와디 투밀라트 Wadi Tumilat’에 위치해 있었다. Source: egyptandthebible.com / 한글 번역: 토마스 아퀴나스)
새로 부임한 왕은 요셉의 일대기와 그가 이집트에 공헌한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는 오히려 히브리인들을 강제 노역에 참여시켜 ‘피톰(Pithom)’과 ‘라메세스(Raamse)’와 같은 곡물을 전문적으로 보관하고 유통하는 대규모 신도시(Store Cities) 건설에 투입하는 등 이들의 세력을 분산시키는 강압적인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강제노역 정책 시행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왕은 요즘의 산부인과 조무사들에게 이스라엘 여자가 아이를 출산할 때 사내 아이면 죽이라고 명령하지만, 산파들은 변명으로 위기를 넘기며 실행에 옮기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하느님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파라오 왕은 더욱 가혹한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가 온 백성을 향해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사내 아이는 모두 나일강에 던져 버리고, 여자아이는 모두 살려 두어라.”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개인 묵상(QT)
“그런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에 군림하게 되었다 (8절) 우리는 그들을 지혜롭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더욱 번성할 것이고,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그들은 우리 원수들 편에 붙어 우리에게 맞서 싸우다 이 땅에서 떠나가 버릴 것이다.(10절)
Then a new king, who knew nothing of Joseph came to power in Egypt. Come, let us deal shrewdly with them to stop their increase; otherwise, in time of war they too may join our enemies to fight against us, and so leave our country.” (NAB)
조직이든 회사이든 새로운 직책을 부여받은 사람은 전후 사정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조직이나 단체가 현재까지 유지되어 오는 동안 공헌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파악하여 그 사람을 우대하며, 존중하고, 격려하여야 합니다. 전후 맥락을 살피지 않고, 개인이 의도한 바를 일방적으로 밀어부친다면 조직 자체가 혼돈과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조직원들도 새로운 리더에게 협력을 하지 않아, 개혁과 혁신 DNA는 사라지면서 조직의 성장과 발전 자체가 멈추게 됩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집단적인 반발을 불러와 새로운 리더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행하지도 못하고 그 직책에서 물러나야 하는 경우까지 생길 수 있습니다.
제2장 모세의 탄생 Birth and Adoption of Moses
모세의 탄생과 입양
모세의 누나는 파라오의 ‘사내 아이 말살’ 정책으로 인해 3개월을 숨어서 키우다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역청과 송진으로 만든 (즉, 외부 방수 및 항균 처리가 된) 왕골(파피루스 papyrus) 상자에 아이를 넣어 강가 갈대 사이에 띄어 놓아둡니다.
목욕하러 강에 나온 파라오의 딸이 파피루스(papyrus) 상자를 발견하고, 그 속에 히브리 출신 사내 아이가 울고 있는 것을 확인합니다. 파라오의 딸이 아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때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이의 누이가 다가와 아이에게 젖을 줄 히브리인 유모를 구해보겠다고 말하자, 파라오의 딸은 그 품삯을 자기가 지불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아이가 성장하자 히브리 유모는 아이를 발견했던 파라오 딸에게 다시 데려다 주었습니다. 파라오의 딸은 그 아이를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였고,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다 I drew him out of the water’ 라고 말하며 ‘모세 Moses (Pulled-Out)’ 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모세가 ‘미디안'(지역)으로 달아나다 Moses’ Flight to Midian
성인으로 성장한 모세가 어느날,힘든 노동을 하고 있는 친척 사이인 히브리인을 이집트 사람이 때리는 것을 보고,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 그를 때려 죽이고 모래에 묻어버립니다.
파라오(왕)까지 살인 사건을 알게 되고 그가 찾아서 모세를 죽이려 하자, 모세는 ‘미디안 Midian’ 땅으로 피신하였습니다. 피신하던 중에 우물가에 앉아있던 모세는 한 무리의 목동들로부터 시달림을 받고 있던 미디안의 사제의 딸들을 구해줍니다.

Note) 미디안(Midian, 지명):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특히 타북(Tabuk) 지역과 아카바만(Gulf of Aqaba) 동쪽 사막 지대에 위치. (좌측부터) 미디안 Midian 권역지도, 미디안 산맥 Midian Mountains, 시나이 반도 쪽 ‘아카바 만 Gulf of Aqaba’ 에서 바라본 미디안 지역, 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 타북 Tabuk 지역에 있는 슈아브 동굴 Shuaib Caves (Source: commons.wikimedia.org)
그녀들의 아버지는 고마움에 모세를 집안에 들이고, 자신의 딸 중에서 치포라(Zipporah, 영어 발음: 지-포라, 작은 새(Little Bird)라는 뜻) 딸을 모세의 아내로 내어주었습니다. 모세는 사내 아이가 태어나자 그에게 ‘외국을 떠도는 사람’이라는 뜻의 ‘게르솜 Gershom’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생각하시다
새로 부임했던 파라오(왕)가 사망하자, 그 동안 이집트의 노예로 힘들게 생활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에게 울부짖었습니다. 하느님은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예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했던 언약을 기억하셨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지켜보고, (상황을) 이해하였습니다.
개인 묵상(QT)
“그것을 열어 보니 아기가 울고 있었다. 공주는 그 아기를 불쌍히 여기며, “이 아기는 히브리인들의 아이 가운데 하나로구나.” 하였다. (6절)
On opening it, she looked, and lo, there was a baby boy, crying! She was moved with pity for him and said, “It is one of the Hebrews’ children.” (NAB)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불상히 여기는 마음(측은지심)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 ‘어진 사람(仁), 즉, 인자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성경 속 위대한 인물로 기록된 모세도 태어남과 동시에 죽어야 하는 히브리 출신 아이였지만, 하느님을 경외하여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겼던 산파들과 이를 불쌍히 여긴 파라오의 딸의 측은지심 덕분에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수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들을 잔인하게 대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야만성이 뉴스에 오르내립니다. 한국인들이 꺼려하는 힘든 일을 대신하고 있는 이들은 우리 사회에 무척 소중한 존재 그 자체입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이토록 소중한 존재이자 나와 동일한 인격체인 그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 주고 있는 지를 반성해 봅니다. 주말에 지하철로, 버스로, 도보로 잠시 나들이 나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고맙다는 말은 못할 지라도 웃는 얼굴로 그들을 마주대하고자 합니다.
제3장 하느님께서 불타는 떨기(덤불) 속에 나타나시다
모세가 장인의 양떼를 몰고 광야의 서쪽 끝, 호렙산(Horeb Mountain)으로 갔을 때에 떨기나무 덤불에서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덤불에서는 불꽃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지만, 덤불은 불에 타지 않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한 모세는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하느님이 자신을 드러내며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말하자 모세는 두려워서 자신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모세가 소명을 받다
하느님은 이집트의 손아귀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꺼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족(Canaanites), 히타이트족(Hittites), 아모리족(Amorites), 프리즈족(Perizzites), 히위족(Hivites), 그리고 여부스족(Jebusites)이 사는 곳으로 데리고 가려고 내려왔다고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이에 모세가 “근데, 왜 하필 나 입니까? 무슨 근거로 내가 파라오 왕에게 가서 이스라엘 후손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빠져나와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며 하느님에게 (따지듯이) 말했습니다. 이에 하느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라 말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이곳에 와서 하느님에게 경배드릴 것”이라고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Note) 가나안족 (Canaanites)은 현대 레바논인과 페니키아의 조상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현대 레바논인이 가나안인의 유전자를 약 90% 물려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히타이트족 (Hittites)은 아나톨리아(현대의 터키) 지역에서 이주해와 헤브론 산지에 정착했습니다.
아모리족 (Amorites)은 시리아 및 가나안 산악 지역에 거주하던 셈족 계열로, 현재의 시리아 및 레반트 지역 인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히위족 및 프리즈족 (Hivites & Perizzites)은 가나안 중부 산악 지대나 레바논 근처에 거주하던 민족으로, 다른 가나안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주변 국가의 원주민들에게 흡수되었습니다.
여부스족 (Jebusites)은 예루살렘(고대 여부스) 지역에 살던 소수 부족으로, 나중에 이스라엘인들에게 정복되면서 그들과 통합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이름을 계시하시다
모세는 하느님에게 자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하느님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물어볼 경우,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를 물어보았습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하고 응답하며 앞으로 영원히 불릴 하느님의 이름은 ‘야훼 The LORD’라고 알려줍니다.
God replied, “I am who am.” Then he added, “This is what you shall tell the Israelites: I AM sent me to you.” (3장 14절, NAB)
모세의 소명에 관한 지침
하느님이 모세에게 말하기를, “너는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함께 이집트 임금에게 가서, ‘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저희가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 주 저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라고 지침을 알려줍니다.
또한, 이를 순수히 허락하지 않을 이집트 왕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 온갖 이적을 일으켜서 결국 이집트를 떠나게 할 것이며, 탈출길에 나선 이스라엘 사람을 위해 이집트 사람들이 호감을 사도록 하여 빈 손으로 떠나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개인 묵상 (QT)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 (10절) 그러자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낼 수 있겠습니까? (11절)
Come, now! I will send you to Pharaoh to lead my people, the Israelites, out of Egypt.” But Moses said to God, “Who am I that I should go to Pharaoh and lead the Israelites out of Egypt?” (NAB)
살아가다 보면 “왜 이걸? 굳이 내가? 꼭 해야 만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드는 경우가 수시로 발생합니다.
개인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상황인데도 꼭 나만이 특정한 사람을 위해 경제적 혹은 재능 기부를 해야하는 상황에 처할 때, 혹은 내 자신도 무척 바쁘고 힘들어 죽겠는데, 옆에 와서 뭔가를 지금 당장 도와주어야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에 처할 때는 무척 곤혹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살인을 하고, 도망자 신세였던 모세도 하느님의 요구사항을 들으면서 마찬가지 심정이었으리 여깁니다. 언제든 체포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곤경에 처한 사람이 지금으로 치면, 언제든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행정의 수반인 대통령 앞에 가서, “뭔가를 하겠으니 허락해 달라!”는 형국이었으니 도저히 이해가 안되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니었을까?라고 당시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보통의 삶믈 살아가고 있는 저와 같은 인간의 생각 혹은 계획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시는 하느님을 과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요? 제 자신도 미처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어떤 계획을 100% 의지하며 신뢰할 수 있는 지를 누가 물어본다면 답변할 자신이 솔직히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어려움에 처한 주변 사람이 있다면 모른 채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조금이라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보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모르는 하느님의 숨겨진 계획이 있으리라고 조금이라도 믿으면서…(하느님 미안합니다. 100% 당신에 의지하지를 못해서요…믿음의 비율을 조금씩 높이려 하고 있으니, 너무 노여워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제4장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능력을 주시다 Confirmation of Moses’ Mission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능력을 주시다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하느님에게 하소연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모세의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고, 모세의 손을 셔츠 않으로 넣으니 한센병 환자의 손처럼 변하는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다. 그래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의 말을 믿지 않으면, 나일강의 물을 퍼다가 땅에 부으면 지면에 닿는 순간 그 물이 피로 변할 것이라고 모세에게 일러주었습니다.
아론이 모세의 대변인이 되다
모세가 자신은 말주변이 없고, 더듬거린다고 (핑계에 가까운) 말을 하자, 하느님이 당신의 권능으로 도와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계속해서 믿을 만한 사람 하나를 붙여 달라고 하자, 하느님이 화를 내시면서 너에게는 달변인 아론 Aron 형이 있지 않느냐고 상기시켜줍니다. 하느님은 그가 모세를 대신하여 말을 전할 것이며, 모세는 하느님을 대신할 것이라 말씀하였습니다.
모세가 미디안 땅을 떠나 이집트로 들어가다.
모세는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이집트를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하느님은 미디안 땅에서 모세가 경험했던 이적을 파라오에게 보여주라고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또한, 하느님은 한편으로는 파라오의 마음을 더욱 완강하게 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내보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말을 따르지 않는 파라오의 아들을 죽일 것이라고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모세의 아들이 할례를 받다
길을 가던 모세가 어느 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는데, 하느님이 (난데없이) 모세를 죽이려고 하자, 모세의 아내 치포라가 아들의 표피를 잘라 모세의 발에 갖다 대며 ‘당신은 나에게 있어 피의 신랑’이라 고백합니다. 그러자 하느님이 모세를 살려두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백성 앞에 서다
하느님을 만난 아론은 하느님의 산으로 가서 모세를 만납니다. 모세는 그 동안 벌어졌던 모든 일을 아론에게 알려주며, 아론과 함께 원로들을 소집하였습니다. 아론이 나서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한 말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주고, 표징도 보여주자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으며 무릎을 꿇어 경배하였습니다.
개인 묵상(QT)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집트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쥐어 준 그 모든 기적을 명심하여 파라오 앞에서 일으켜라. 그러나 나는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내 백성을 내보내지 않게 하겠다. (21절)
The LORD said to him, “On your return to Egypt, see that you perform before Pharaoh all the wonders I have put in your power. I will make him obstinate, however, so that he will not let the people go.” (NAB)
하느님은 때론, 상당히 짖굿은 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그 동안 경험한 다양한 이적을 파라오에게 보여주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의사결정권한을 가지고 있는 파라오의 마음은 더욱 완고하게 만들겠다고도 합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나더러 어쩌란 말입니까?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일을 시키길래 뭔가 좀 해보려고 움직이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훼방을 놓는듯한 뭔가를 또 하시니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아이러니한 상황에 내몰린 셈인데, 이럴때는 군말없이 묵묵히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이 좋습니다. 미래에 벌어질 결과는 하늘(하느님)에 맡기고, 일단 오늘 하루 24시간 동안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는, 골든 타임 3분~5분 후의 결과를 모르는 것이 인간의 삶 입니다. 그렇다고 할 지라도, 골든 타임의 순간에 직면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일생의 소명(Calling of Life)’은 하루의 소명, 한달의 소명, 1년의 소명, 10년의 소명…들이 모여서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경우에는, 오늘 저에게 주어진 24시간을 조금이라도 유용하고, 알차게 사용해 보려고 합니다.
제5장 모세와 아론이 주님의 말씀을 파라오에게 전하다 Pharaoh’s Obduracy
(이집트) 파라오의 완고함
모세와 아론이 이집트 파라오(왕)에게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파라오는 하느님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노동 인력으로 만 바라보던 파라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내보내지 않겠다고 거절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가 거절할 경우 흑사병과 칼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덮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파라오가 이스라엘인들을 더 심하게 부리다
파라오는 그날로 벽돌을 만들 때 사용되는 지푸라기를 이스라엘 노동자들에게 지급하지 말라고 근로감독관에 말하였습니다. 재료가 지급되지 않으면서도 하루에 제작해야 벽돌 수량(Quota)은 그대로 두어 이스라엘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들었고, 하루 할달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폭행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인 조장들이 파라오에게 항의하다
폭행이 계속되자 이스라엘 조장들은 파라오에게 이를 항의하였습니다. 그러나, 파라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게으르고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하느님께 나아가 제사를 드리고자 한다며 그들의 민원을 무시하였습니다.
조장들의 불평과 모세의 탄원
조장들이 파라오를 면담하고 나오다가 모세와 아론을 만났는데, 몹시 난처해진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향해 하느님께서 당신들을 심판해 주면 좋겠다고 원망어린 하소연을 늘어 놓았습니다.
모세와 아론 때문에 오히려 파라오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더욱 역겹게 생각하도록 만들어 이스라엘 사람을 죽이기 위해 그의 손에 칼을 쥐어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하느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왜 괴롭히고 있는 지, 왜 자기를 이곳에 보냈는 지, 그리고 사람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데 왜 구해주지 않는지”에 대해 하소연을 했습니다.
개인 묵상(QT)
“파라오가 대답하였다. “그 주님이 누구이기에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내보내라는 것이냐? 나는 그 주님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이스라엘을 내보내지도 않겠다.” Pharaoh answered, “It is just because you are lazy that you keep saying, ‘Let us go and offer sacrifice to the LORD.'”(17절, NAB)
육체를 가지고 생활하는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욱 신뢰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보이는 것을 먼저 믿게 되어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에 대한 인정이나 판단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면서도 불안하면 내일을 알고 싶어 사주, 관상,무당 등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인간은 보고, 듣고, 배운대로, 경험한 것만 믿으려 하고 그에 따라 행동합니다. 자연적으로 인식의 한계 속에 갖힌 채 살아갑니다. 고집스럽기도 하고, 편견을 가지고 있고, 특정 사안에 대한 무관심과 남의 의견을 무시하며, 잘 들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설령 듣는다 하더라도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에만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편, 여러 사람의 의견에 휘둘리는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만의 생각의 균형이 없기에 이러저리 휩쓸리다가 곤경에 처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것들로 인해 보통의 사람은 합리적인 판단을 잘 하지 못합니다. 합리적인 판단이 결여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중요한 의사결정은 사회공동체 시스템과 구성원들에게 재앙을 불러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아주 간단한 지점에서 드러납니다.
성경 속의 지혜, 천주교 신부님들과 같은 사제들의 강의, 수녀님들의 코칭 등을 종합하여 의사결정의 기준을 하느님의 속성에 맞추어 생각하고 행동하는가? 아니면, 하느님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마음 내키는대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고 있는가? 입니다.
나는 어디에 기준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 지를 스스로에 다시 물어봅니다.
제6장 모세가 부르심을 받다
이전 장에서 나왔던 하느님의 언약이 반복됩니다. 이집트에서 벽돌 만들기와 같은 힘든 노동을 하며 폭행을 당하는 노예로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와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언약이 반복됩니다.
제6장 중간에는 아므람과 요케벳 사이에서 태어났고, 레위 지파 중에서 ‘크핫’ 계통의 후손인 모세와 아론의 족보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아래 이미지 ‘가계도’ 참조)

아론 Aaron과 모세(Moses)가 태어나기까지의 가계도 (Image Created by Claude)
아울러, 인간으로서 이 일을 주도할 리더들은 모세와 아론이기에 하느님이 이 두 사람에게 명하여 이집트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데리고 가겠다고 말을 하라고 반복해서 이야기 합니다.
모세 역시 만만치 않게 온갖 핑계거리를 동원합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고도 하고, 파라오가 자기 말을 듣겠느냐? 고 하면서 하느님과 지속적으로 실랑이를 벌입니다.
개인 묵상(QT)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들도 제 말을 듣지 않았는데, 어찌 파라오가 제 말을 듣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입이 안 떨어져 말을 못 합니다.” (11절)
주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신 다음,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라고 명령하시며,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들과 이집트 임금 파라오에게 보내셨다.” (12절)
“But Moses protested to the LORD, “If the Israelites would not listen to me, how can it be that Pharaoh will listen to me, poor speaker that I am!” Still, the LORD, to bring the Israelites out of Egypt, spoke to Moses and Aaron and gave them his orders regarding both the Israelites and Pharaoh, king of Egypt.” (NAB)
인간은 대체로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정하고 삽니다. 미래에 펼쳐질 스스로의 역량이 얼마나 되는 지 잘 알지 못합니다. 미래의 일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대미문의 일이 닥치면 본능적으로 두렵고 불안합니다.
하느님은 막강한 파워가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인간의 살고 죽는 생명을 다루기도 하고, 생활 구석구석에서 인간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다 헤아리기가 너무 복잡하므로, 천사를 보내고, 어머니를 보내고, (모세 옆에 아론을 붙여주었듯이) 주위의 사람들을 그 사람 곁에 붙여주어 일을 해결한다는 말씀을 주위에서 전해들은 기억도 납니다.
현실에 안주하면, 그 현실에서 머무는 사람이 됩니다. 모세가 끝가지 버티는 바람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는 역할을 포기했다면 그들은 당시에 평생 동안 노예로 살아야 하는 운명이었을 것 같습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고(故)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거창하게 소명(Calling)까지는 아니라 할 지라도 맡겨질 일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처리하려면 그에 걸맞는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신체의 한계, 학력의 한계, 지적 능력의 한계, 경제력의 한계 등 온갖 이유로 자신의 ‘역량을 확장할 수 있는 문‘을 스스로 걸어 잠그고 있지는 않는 지 돌아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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