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부수적인 제목으로 “자본주의 너머의 세계로 가는 안내서 A Guide to a World beyond Capitalism“라는 설명문이 추가로 따라옵니다.
1장에서는 탈성장의 정의와 개념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2장에서는 반대 영역인 ‘성장’의 개념에 대해서 다룹니다. 3장에서는 ‘성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살펴봅니다.
4장에서는 탈성장의 다양한 비전의 흐름을 살펴보고 이를 공통된 정의로 통합하며, 5장에서는 이를 현실로 만들 수 있도록 6개 영역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정책을 제안합니다.
6장에서는 탈성장 운동을 위한 협력 네트워크 구축 등 탈성장 영역을 좀 더 확대, 발전시킬 수 있는 변화 전략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7장에서는 탈성장 토론에 제대로 통합되어야 할 4가지 영역, 즉 계급과 인종, 지정학과 제국주의, 정보통신 기술, 민주적 계획을 논의합니다.
<미래는 탈성장> 책 겉표지 (Image Source: 나름북스 페이스북 화면 캡처)
베를린에 기반을 둔 경제사학자, 사회이론가 ‘마티아스 슈멜처‘ Matthias Schmelzer와 탈성장, 비판적 에코 페미니즘을 도구로 활용하는 변형 연구자이자 활동가 ‘안드레아 베터‘ Andrea Vetter, 그리고, 생태 정치 웹사이트인 Uneven Earth 공동 창립자 ‘아론 반신티안’ Aron Vansintjan 3명이 공동으로 책을 기술했습니다.
탈성장의 정의
전체 지구의 생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더 적은 에너지와 자원의 처리량을 기반으로, 민주주의를 심화하고 모두에게 좋은 삶과 사회 정의를 보장하는 사회로의 민주적 전환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끊임없는 확장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 입니다.
이와 유사한 개념 ‘그린 뉴딜’은 성장을 추구합니다. 그린 뉴딜은 역시 사회 전체를 재생에너지 기반 등 특정 사안 만을 지목하여 사회가 환경 보호(재생)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정작 원인을 제공한 부유한 자본주의자, 자본주의 시스템과 이데올로기 혹은 기업가들의 행동 전환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린 뉴딜 플랫폼은 경제 성장을 지지하거나 사실상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을 제시하면서도 목표가 성장인지, 탈성장인지 구분이 모호합니다.
또한 그린 뉴딜 플랫폼은 선진국과 다른 국가 간의 불균등한 신식민지 관계에 대항하기 보다는 단순히 지속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예들 들어, 리튬을 구매하는 부유한 국가와 리튬을 채굴하는 가난한 국가 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해소하지 않고 태양 에너지와 리튜 배터리 저장 기술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2020년 기준, 리튬 주요 생산국 순위. 호주가 1위, 미국과 칠레, 아르헨티나가 그 뒤를 잇는다. 남미의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를 ‘리튬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른다. 세계 전체 리튬 매장량의 54%가 매장되어 있다. (Source: Wikipedia 번역 및 요약-운영자)
이 시스템을 비판하지 않는 그린 뉴딜은 그저 새로운 문제점을 만들어 내고 신식민주의를 고착시킬 수 있습니다. 이 경계선이 그린 뉴딜과 탈성장의 분명한 차이점 입니다.
탈성장이 주목을 받게 된 계기
탈성장의 특별한 강점은 자본주의의 생물 물리학적 신진대사(순환관계), 생태적 현대화의 지구적 정의와 자원적 합의, 성장 기반 경제학이 영속시키는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에 대한 강력한 분석, 그리고 자율성과 돌봄, 충족에 기반한 경제를 위한 위한 보다 심층적인 정책 제안의 발전을 포함합니다.
탈성장은 다른 사회 생태론적인 제안과도 명확하게 구별됩니다. 사회적 신진대사의 정치화와 정책 설계에 대한 파급효과를 다룹니다.
”포르투 알레그레 정신’을 대변하지만 생산주의를 지향하는 이들에게 탈성장 사회의 장점을 설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포르투 알레그레 Porto Alegre 정신을 반영
포르투 알레그레는 브라질 최남단에 있는 ‘리우 그란데 두술 Rio Grande do Sul’ 주(州)의 수도로 인구 3백 50만 명인 브라질 제2의 경제 도시입니다.
2019년부터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스위스)의 개최에 맞서 전세계 진보 진영이 주최하는 세계사회포럼(WSF)이 이곳에서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세계사회포럼 World Social Forum 공식 웹사이트 https://wsf2021.net
브라질 노동자당(PT)이 지난 14년간 진행해온 ‘포르투 알레그레(Porto Alegre)의 실험’이 새삼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1980년 창설된 노동자당은 지난 88년 지자체 선거에서 당선자들을 대거 내면서 이 도시를 중심으로 자신들이 집권한 지역에 참여 민주주의를 적극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주택, 대중교통, 환경, 병원, 학교, 문화, 법·질서 등 생활의 전 분야에 걸쳐 시 예산의 배정과 집행에 지역 주민들이 민주적으로 참여하고 결정하는 ‘참여 예산제’를 도입, 예산 결정에서 집행까지 전 과정에 투명성을 확보했습니다.
이로 인해 부정부패가 사라지고, 주요 예산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많이 집행되었습니다. 사회가 투명해지자 외국에서 투자도 늘었습니다.
프랑스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이냐시오 라모네’ 주필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조화롭게 접목된 이 도시를 ‘새로운 종류의 민주주의가 싹트는, 새로운 사회의 실험장’으로 정의한 바 있습니다. (출처: 경향신문, 아래 참조)
탈성장 용어의 탄생
1972년 로마 클럽 The Club of Rome 보고서에 ‘성장의 한계 The Limits to Growth‘ 라는 표현이 등장하여 세계에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영어 De-growth로 번역되는 프랑스어 décroissance 라는 용어의 원래 의미는 ‘부패하다 Decay’를 의역한 것 입니다. 프랑스어 Croissance는 ‘성장(Growth) 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물리학과 열역학을 경제 이론에 통합한 루마니아 출신 미국 수학자-경제학자 니콜라스 게오르게스쿠-뢰겐 Nicholas Gerogescu-Roegen 이 주요 인물 입니다.
‘투입된 에너지 만큼, 동일한 열량이 반드시 배출된다’는 이론입니다. 즉, ‘석유와 석탄 에너지를 많이 태울 수록, 동일한 열량의 (오염)물질이 지구에 배출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환경오염을 근본적으로 줄이려면, 투입되는 (석탄/석유) 에너지를 줄여야 만 가능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가부장제, 신민주의, 제국주의, 인종주의와 자본주의와 같은 지배 체제를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핵심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 직시하고 서술해 나갑니다.
탈성장은 생태학적, 패미니스트적, 반자본주의적, 탈신민주의적 접근 등 현재에 대한 다양하고 폭 넓은 분석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탈성장의 핵심 비판 대상은 ‘경제학’ 분야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탈성장은 변화되고, 정의로우며, 성장 독립적인 경제를 만드는 것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구조적 위기를 초래하지 않을 확실한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틀을 잡습니다.
충족, 돌봄, 정의에 기반한 다차원적 변혁의 조합이 탈성장 입니다. 탈성장 (이론과 행동)이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진정한 위기 입니다.
탈성장은 모든 현대 기술과 편의에 반대하기 보다는 공공의 풍요를 달성하기 위해 생산력과 사회적 신진대사의 발전을 민주화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더 의미있고, 덜 파괴적인 형태의 행복과 새로운 형태의 삶의 기쁨을 강화하는 것 또는 대안적 쾌락주의 Alternative hedonism를 지향 합니다.
탈성장은 진보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끊임없는 성장을 고수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를 저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탈성장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경제 성장’ 이라는 바로 그 전제를 겨냥하는 것이며, 대신에 소득과 부의 급진적 재분배, 지구적 정의, 웰빙 보장에 초점을 맞춥니다.
성장 지상주의자들이 경제가 어려울 때 펼치는 긴축 재정 정책은 공공 서비스를 밀어내고, 부유층에게 혜택을 줌으로써 불평등을 심화시킵니다.
탈성장 정책은 생산의 민주화, 부유층의 자산과 과소비 제한, 공공 서비스 확대, 사회 내부 및 사회 간의 평등 증진에 중점을 둡니다. 탈성장 기조 안에서 공공 서비스는 오히려 번성하게 됩니다.
본질적으로 탈성장은 자본주의적 시장거래, 교환 가치, 물질적 소비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그 보다는 자원의 조달, 사용가치, 만족스럽고 의미있고, 공생공락 관계의 집합적 형태에 의해 웰빙이 매개되는 사회를 목표로 합니다.
탈성장 슬로건 중 하나가 말하듯 “더 적게 거래할 수록, 더 많은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탈성장은 소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비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삶을 좌지우지 하는 소비문화의 지배현상(현재 위기에 대한 해법이 개인의 선택이라는 틀로 제한하는 것)과 위상 경쟁에 기반하는 ‘지위적 소비’의 부조리를 비판합니다.
탈성장은 유용한 성장과 파괴적인 성장, 필수적인 성장과 불필요한 성장을 구분하지 않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GDP의 맹점을 겨냥합니다. (*GDP는 소득에 따른 개인의 행복지수를 반영하지 못한다)
탈성장은 특정한 경제활동과 생산 및 소비 형태를 구분하고, 사회적 필요, 정의, 돌봄, 지속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며, 그 중 일부는 규모를 축소하고 다른 일부는 번성시키는 정책을 제안합니다.
탈성장은 남반구를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북반구의 탈식민화를 목표로 하는 글로벌 정의의 관점에서 명확하게 출발 합니다.
소위 ‘제국적 생활양식‘을 유지하는 북반구의 부유층과 이들을 유지하는 ‘식인 자본주의 시스템’에 촛점을 맞춥니다. (*탈성장 반대론자는 성장도 아직 하지 못하고 잇는 가난한 국가의 탈성장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참고자료 및 출처>
- 문영두 기자, “개혁성지, 포르투 알레그레’, 경향신문 2020-10-28
- 마티아스 슈벨처, 안드레아 베터, 아론 반신티안 지음, 김현우, 이보아 옮김, <미래는 탈성장>, 나름북스 Page 9-52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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