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Note)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왜 그토록 힘든가? ‘채식주의자’ by Han Gang


‘다름’을 덤덤하게 인정하기가 그토록 힘든가?

보통 사람의 삶은 대체로 생명을 지닌 하나의 존재로서 숨을 쉬지만, 때론 투명 인간처럼 존재감 없는 대상으로 살아가고 있는 실로 고단한 인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각자 한 가지 정도는 자신의 존재감을 소속된 그룹이나 공동체에서 드러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문제는, 어떤 차별화 된 존재감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야 하는 것인가?이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Page 8)

한강 지음, <채식주의자>, 창비 2017 (Image Source: Han-gang.net)

한 사람이 일상에서 주로 무엇을 먹느냐? 그 행위 하나 만으로도 사회는 인간을 특정하며 판단하려 달려든다. 소설 속에서는 ‘채식을 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특별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공동체에서 다수가 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의 대체적인 반응은 ‘당혹스러움’이다.

상대방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 모르기 때문에 ‘당혹스러워 한다’. 그 다음에는 에둘러서 ‘별난 사람 혹은 특이한 사람‘이란 표현으로 설명한다. 독특하기에 본 받고 싶은 사람이라는 의미보다는, 가능한 한 멀리해야 할 ’기피 대상‘이라는 뉘앙스에 더 가깝다.

동물과 사람을 확연하게 구분 짓는 독특한 특성 중 하나인 ’인간의 존재감‘은 어디서 올까?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사람의 존재감은 어느 선까지 인정해야 할까? 라는 어려운 문제도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아버지,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순간, 장인의 억센 손바닥이 허공을 갈랐다. 아내가 빰을 감싸쥐었다‘(page 57-58)

공동체의 삶과 다른 방향을 향하는 사람의 독특한 삶은 가족이라 할 지라도 견디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무엇이든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가족’이라는 운명 공동체는 통상적인 개념과는 정반대로 움직일 때도 많다. 심지어는 가장 가까운 관계의 주체들이 은밀하면서도 가장 처참하게 구성원의 인격을 말살하기도 한다.

가정 내의 폭력에 소극적으로 저항하고자 소설의 주인공은 첫 행동으로 모두가 좋아하는 ‘고기’를 먹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한다. 급기야는 압박이 더 심해지는 상황에서 가족이 모두 보는 앞에서 자신의 손목을 칼로 긋는 행위로 강력하게 저항한다.

“육식이란 본능이에요. ‘채식’이란 본능을 거스르는 거죠. 자연스럽지가 않아요. (중략) 골고루, 못 먹는 것 없이 먹는 사람이 건강한 거 아니겠어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원만하다는 증거죠.”(page 35)

문 밖을 나서면 이번에는 ‘사회라는 공동체’가 ‘편견’이라는 가면의 탈을 쓴 채 소리 없는 폭력을 행사한다. 그 폭력에 맞서기 위해 보통 사람들은 침묵을 가장한다. ‘순종 하는 듯한, 성실한 사회생활’-바꿔 말하면 ’침묵‘이라는 비겁함-이 최선으로 받아들여 지는 세상이 대세이다.

이는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등 지정학적 위치와 상관없이 모두 비슷하다. 인간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구성원의 ’유별난 혹은 해로운 행위‘를 통제하는 방법에서는 인간과 동물에 구분을 두지 않는다.

사람을 한번 물었다는 마을의 ’유별난’ 개 한 마리를 통제하기 위해 인간은 잔인함이 무엇인지 모른 채 행동하기도 한다. 공동체의 평화 혹은 안전을 외치며 ’응징‘을 하지만, 이를 행하는 사람의 행위 자체는 평화와는 거리가 먼 ‘잔인함’의 극치를 보인다.

작가는 고통 속에 몸부림쳤던 생명체를 요리 재료 삼아 동네 사람들과 태연하게 저녁 식사를 겸한 잔치를 벌이는 인간들을 묘사한다. 행위의 주동자는 다름 아닌 주인공의 아버지이다. 작가는 그렇게 인간들로 구성된 작은 공동체인 가정에 이어서 다음 단위 공동체인 마을(사회)의 잔혹한 내면을 드러낸다.

생명이 없는 사랑의 행위는 욕망일 뿐

인간의 첫 번째 욕망인 ’식욕‘을 <채식주의자>에서 다루었다면, <몽고반점>‘에서는 두 번째 욕망인 ’성적 욕망’을 다룬다.

생명 탄생을 위한 성스러운 행위로서의 성욕이 있다. 또 다른 한편에는 오로지 육체의 쾌락 만을 위한 욕구가 있다. 정면으로 충돌하는 두 개의 지점을 형부와 처제와의 성관계라는 ’사회의 절대적 금기 행위‘를 소재로 사용하여 비판한다.

한강, <채식주의자> 창비(2024) 리마스터 (Image: 인터넷 서점, 알라딘)

이 둘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역설적으로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꽃’이다. 2024년 리마스터 판 책 표지 디자인을 다시 보면 생명이 탄생하는 듯한 나무와 잎이 보인다. 나무 형상의 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몽고반점 위로 그의 붉은 꽃이 닫혔다 열리는 동작이 반복되었고, (중략) 가장 추악하며,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의 끔찍한 결합이었다.“ (page 169)

소설의 여자 주인공은 ‘고깃덩어리’로 상징되는 남성의 육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사람 몸을 캔버스 도구로 삼아 그려진 ‘꽃’에 순수하게 반응할 뿐이다. 그에 반해, 남성은 쾌락의 대상으로 여자 주인공을 바라본다.

확연히 다른 두 사람의 시선이 충돌하는 지점이며, 추악함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교차한다.

“어쩌면 그녀의 내면에서는 아주 끔찍한 것,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어, 단지 그것과 일상을 병행한다는 것만으로 힘에 부친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일상에서는 호기심을 갖거나 탐색하거나 일일이 반응할 만한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은 건지도 몰랐다.” (page 125)

나무처럼 공존하는 다양성의 공동체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고, 복잡한 계산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 세상에는 신경 쓸 사안들이 넘치고 넘친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은 오히려 지극히 단순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그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언니,……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page 210)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받아줄 나무를 찾아낼 수 없었다. 어떤 나무도 그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짐승들처럼, 완강하고 삼엄하게 온몸을 비틀고 서 있을 뿐이었다.” (page 248)

주인공은 나무 혹은 꽃과 같이 서로를 해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듯 하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잎을 자라게 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동반 성장‘을 추구하는 세상 만을 오롯이 바라보길 원한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세상은 그녀를 가만 놓아두지 않고 급기야 사회에서 격리를 해 버린다.

주인공의 언니는 고기를 먹지 않고, 저항하다 지치고, 나무가 되어 뿌리를 내리려 했던 동생의 생명이 꺼져 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이해하지 못한다. 단지, 동생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격리 시설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주인공의 언니는 삶을 되돌아 본다. 보이지 않는 가치관의 폭력에 어린 시절부터 ‘침묵과 성실함’으로 일상을 묵묵히 살아온 자신의 삶은 조숙함이 아니었다. 그는 이를 뒤늦게 깨닫는다. 그것은 비겁함이었고, 다만…무난하게 살아가기 위한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임을 자각하게 된다.

주인공은 아마도 각기 다른 형태의 나무들이 사이좋게 살아가는 숲을 이상적인 사회로 여겼을 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그늘을 제공하며 같이 성장하다가, 죽은 후에는 사람들에게 온기를 제공하는 땔감이 되어 마지막 불꽃을 발하는 따뜻한 존재!

한강, <채식주의자>, 다양한 언어의 표지(Image: han-kang.net 캡처)

남들과 ‘다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침묵’이라는 가면을 쓰고 모두가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려는 사회는 ‘비겁한 사회’이다. 모두가 가면을 쓰라고 서로가 강요한다면 주먹과 칼을 사용하지 않을 뿐, 그건 또 다른 의미에서의 ‘폭압적인 사회’이다.

나와는 다른 유형의 음식을 먹는 사람,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을 사회 구성원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몸이 불편하여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 유전자 이상으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이에 대한 답변을 공동체 구성원들이 어떻게 하는 지를 보면, 그 사회의 ’성숙함‘ 정도를 판가름할 수 있다.

작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사람을 우리 사회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마주해야 하는 지를 묻는다. 그리고, ’나무처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주인공‘과 같은 순수한 정체성을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있는 지를 독자들에게 던진다.

나와 다른 식성과 기호, 독특한 가치관과 이데올로기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편견과 차별 없이 공존할 수 있을까?

세 편으로 구성된 각각의 스토리에 드러난 인간의 3대 욕망(식욕, 성욕, 그리고 수면 욕구)이 표출되는 방식과 이에 대처하는 주인공의 신념에서 나오는 행동을 연결하여 바라보면 어느 정도 실마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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