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빈곤과 불평등의 세기를 끝내기 위한 탈성장의 정치경제학 <격차 The Divine> 자유무역과 가상 원로원의 부상


  • <The Divide: A Brief Guide to Global Inequality and Its Solutions>, 제이슨 힉켈 Jason Hickel, William Heinann 2017 (Penguin Random House)
  • 김승진 옮김. 홍기빈 해제(제목풀이), 아를 출판사 2024년 7월 초판 발행
<The Divine>, (Book Cover, Image: Google Books, Screen Capture)

자유로운 사람만이 협상을 할 수 있다. 죄수는 계약 관계에 들어올 수 없다.

– 넬슨 만델라

자유무역과 가상 원로원(세계무역기구, WTO)의 부상

식민지 시대, 원조/개발 기금을 빌미로 하는 구조조정 시대를 지난 글로벌 남반구에 또 하나의 시련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글로벌 상거래를 지배하는 새로운 규칙과 이를 실행하는 새로운 기구가 출현했다.

세계무역기구 공식 웹사이트 화면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과 더불어 서구 열강의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을 글로벌 차원에서 전개하도록 앞장서는 기구, 1995년에 탄생한 <세계무역기구>이다. 사람들은 자유로운 무역이 각 나라의 경제발전을 더욱 가속화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이다.

14세기 이후로 특히 18세기에 영국의 자국의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높은 관세로 외국 경쟁자들을 차단하고 국내 시장을 보호했다. 1776년에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은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유치산업이론(Infant Industry Theory)으로 초기 미국 산업을 보호했다.


* 유치산업이론(Infant Industry Theory: 국제적인 경쟁력이 없고, 성숙되지 못한 자국의 산업을 (어린 아이처럼) 일정기간 보호하며 육성하는 경제정책 이론 (운영자 해석)


1860년대-1930년대까지 미국 경제는 강도 높게 보호되었다. 영국은 미국에서의 손실을 만회하고자 중국에서는 아편전쟁을, 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식민지 개척으로 자유시장을 강요했다.

유치산업이론을 적용하여 일정기간 자국의 유치산업을 보호하는 것은 가난한 나라들이 국가판 구두닦이 소년을 핵물리학자와 같은 탁월한 존재로 성장,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산업혁명 시대-식민지 시대-쿠테라 시대-원조/개발 차관에 의한 국가 단위의 ‘구조조정’ 시대를 거치며 서구 열강에 수탈당하며 경제적 발전 토대를 상실한 글로벌 남구 국가들은 또 다시 동일한 관세를 적용해야 하는 ‘자유무역‘ 시대를 맞이하였다.

19세기 초의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르도는 현재 자유무역 이론의 주춧돌을 놓은 사람이다. 이를 현대적으로 확대한 사람들은 ‘헥셔-올린-새뮤얼슨’이라는 3명의 경제학자들이다. 이 이론은 글로벌 불평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로써 서구 열강은 1990년대부터 가난한 나라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새로운 시스템으로 차단하였다. 무역은 현실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자금의 전쟁이다. 그리고 이 전쟁은 글로벌 북부가 글로벌 남부를 상대로 벌인다.

이에 반해 독일의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과 노동의 상대적 부존량은 역사적, 정치적 과정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이 만든 것이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사전 조건 중 하나인 ‘기회의 평등’은 정치, 사회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핵심 이슈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평평한 운동장’은 환상 그 자체이다.

부유한 계층(국가)는 경쟁력있는 능력을 가지고 링 위에 올라온다. 가난한 계층(국가)은 경쟁력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에 게임 시작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다.

감염병, 제약회사, 글로벌 특허, 그리고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사람은 건강해야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다. 부자 나라들은 민영의료보험료를 충당할 여력이 있고, 중상류 국가들도 공공 의료보험으로 자국민의 생존을 보호하고 있다.

Medicine and Medical Equipment (Image: Unsplash)

나라들은 매달 지출해야 하는 비용도 없고, 국가 차원의 의료시스템도 미비하다. 고통 속에 견디어야 하는 것은 국민들이다. 가난한 나라들이 자국민에 대해 질병 치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숨겨진 이유는 무척 높은 약값 때문이다.

19세기 말 세계의 평균 특허기간은 13년, 1975년에는 17년에서 WTO 자유무역 체재에서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협정‘(TRIPS,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에 의해 20년이라는 새로운 기준으로 수정되었다.

과거에는 제약회사들의 약품의 구성 성분이 아니라 ‘제조법’에 대해서만 특허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TRIPS 도입 이후, 특정 기업이 특허를 가질 수 있는 영역을 분자 단위까지 확대함으로써 ‘복제약’ 만드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성분 만 알면 얼마든지 유사 치료약을 만들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린 셈이다. 그렇다고 국가가 나서서 특정 기업을 상대로 특허 분쟁 소송을 국제적으로 제기할 수 없는 상태를 세계무역기구는 만들어 버렸다.

일반적으로 국가는 ‘주권자 면제 Sovereign Immunity’라는 면책 특권을 누린다. 국가는 소송을 당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 원칙이 ’투자자-국가 분쟁‘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국가는 외국 기업에 의해 발생한 자국 내의 피해를 공식적인 분쟁 절차를 통해 주장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특정 기업이 한 나라에서 투자를 한 후 사업을 하다가 환경 오염 등을 일으켜도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거꾸로 국가에 의해 제품의 사용중지나 시설을 폐쇄할 경우 기업을 국가를 상대로 세계무역기구에 제소를 하여 미래 수익까지 계산하여 보상을 받고 있는 ‘이상한 체재’에 살고 있다.

실제로 미국 기업 다우애그로사이언스는 자신들이 생산 및 판매한 농약이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캐나다에서 사용이 금지되자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도 있었다.

멕시코에서는 미국 기업 메탈클래드가 유해 폐기물 매립장을 운영하다가 주변 환경을 오염시켜 주민들의 건강이 위협하자 메시코 정부는 그 지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해당 기업은 자사의 토지와 시설을 ‘징발’한 것이라며 세계은행이 관장하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ICSID, International Centre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에 분쟁 조정 절차에 이의를 제기했고, 멕시코 정부는 기업 손실액 1560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주권자에 의해 선출된 한 나라의 국민이 해외 투자 기업에 의해 심각한 피해를 당해도 면책의 원칙도 모자라 ‘세계은행’이 뒷배를 보장하는 기업들에게 손해배상까지 해야 하는 세상이다. 이는 단순한 모순이 아니라, 민주적 절차에 의해 형성된 법질서를 완전하게 거꾸로 뒤집는 것이다.

북미 자유무역협정, 중앙아메리카 자유무역협정, 범대서양 무역투자동반자협정, 환태평양 동반자협정 등은 모두 세계은행과 세계무역기구가 주도하고 관장하는 협정들이다.

현재 150개 가까운 나라에 4300개 이상의 자유무역 지대가 있다. 이런 고립된 영토에서는 노동법, 안전 기준, 관세, 조세, 심지어는 기본적인 헌법적 권리와 민권까지 일반적인 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가난한 국가, 개발도상국들이 자기 환경에 맞게 그나마 대등한 위치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특정 국가와 일대일로 개별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1:1로 협상을 추진할 경우, 부자 나라들은 해외투자 축소 등 다양한 옵션으로 가난한 국가를 코너로 몰아넣는다.

가난한 나라들은 생존하기 위해서 만으로도 해외 투자 유치를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하기에 외국 투자자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 더구나, 투자했던 자본이 빠르게 해당 국가에서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는 것은 재앙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가상의 원로원, 세계은행, 그리고 <기업환경보고서 Doing Business>

세계은행과 세계무역기구가 주도하는 자유무역 시스템은 21세기에 고대 로마 시대 최고의사결정기관인 ‘로마원’ 역할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다. 강력한 무기는 세계은행이 매년 발간하는 <기업환경보고서 Doing Business>이다.

Doing Bussiness Report 2020 by World Bank

보고서는 매년 세계 각국을 ‘기업하기 좋은 환경’ 척도에 따라 등수를 매긴다. 정부의 규제가 적을 수록 순위가 높아진다. 규제가 거의 없다면 최고 순위로 등극할 수 있다.

최저임금, 유급휴가, 초과 근로수당 등을 법제화하는 나라는 순위가 낮아진다. 해고수당을 지급하는 나라도 순위가 낮아진다. 법인세, 재산세, 배당세, 자본거래세가 있는 나라를 응징한다. 디폴트를 선언할 수 있는 나라도 순위가 낮아진다.

주주(투자자) 가치의 극대화 원칙을 천명하면 순위가 올라간다. 외국인 토지 구매 규제가 없을 경우 순위는 올라간다. 세계은행의 대표 사업인 이 보고서의 기준을 보면, 기업의 이윤이 아닌 것은 그 어떠한 것도 중요하지 않다.

건강, 행복, 민주주의 관련 지표는 무관심하다. 임금과 고용율 등 노동자들이 이익을 얻으면 순위는 내려간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다.

중국의 무역장벽을 부수기 위해 영국 함대가 중국을 침공한 1842년 아편전쟁 이래로 자유무역이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자유’와 관련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외국 투자자들 앞에서 세계 각 국가는 인질이 된다. 자유무역지대는 그나마 고립된 영토이지만, 자유시장의 논리가 제약없이 도처로 확대되면 세계가 어떤 모습이 될 지를 엿볼 수 있다. 그 모습은 한마디로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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