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Divide: A Brief Guide to Global Inequality and Its Solutions>, 제이슨 힉켈 Jason Hickel, William Heinann 2017 (Penguin Random House)
- 김승진 옮김. 홍기빈 해제(제목풀이), 아를 출판사 2024년 7월 초판 발행

하나의 국가를 정복하고 노예화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칼로 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빚(채무)으로 하는 방법이다.
– 존 애덤스, 미국 건국 초기의 정치인
부채, 계획된 비참함의 경제학
1950년대와 1960년대 지구 남반구 국가들은 서구 열강이 쿠테타 등을 뒤에서 몰래 지원하면서 자국의 기업을 지원했지만, 예전과 달리 마음대로 경제적 통제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1975년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독일 6개 국가는 프랑스 북부 ‘랑부이성‘에 모였다. 나중에 캐나다가 합류하면서 오늘날 막강한 세력으로 활동하는 G7이 탄생했다.
이들의 목적은 남반구 국가들의 ‘자국 발전주의’를 저지하고 천연자원의 가격을 올리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 유엔의 의사결정 방식도 기존의 화원국 전체 ‘총회’ 방식에서 ‘안전보장이사회’로 변경해버렸다.
1970년대 중동 국가들이 연합하여 주도한 석유 수출금지는 미국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인플레와 낮은 성장이라는 경제적 위기를 촉발했다. 반면에, 중동은 엄청나게 쌓인 석유 이익 대금 4500억 달러(약 607조 원)를 어디에 사용할 지 몰랐고, 결국 이 돈을 미국 월 스트리트에 돌렸다.

문제는 월스트리트 역시 미국 경제가 침체기에 있어 새로운 활용처를 찾아야 했다는 점이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은 G7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지구촌 남반구 국가들을 상대로. ‘원조’ 혹은 ‘개발 기금’라는 명목으로 막대한 자금을 국가를 상대로 하는 대출금으로 풀기 시작했다.
1979년에 이란 혁명으로 촉발된 2차 오일쇼크가 시작되자 남반구의 웬만한 국가들은 자금 부족의 위기를 맞았고, 달러가 추가로 필요했다. 서구 열강들은 이 절호의 찬스를 살려 국가 부채 상환 능력과 상관없이 중동에서 흘러들어온 막대한 자금으로 각 국가를 상대로 대출을 무한대로 늘렸다. 글로벌 서브 프라임 대출의 시작이다.
1982년 멕시코가 처음으로 국가 채무불이행(디폴트)를 선언했다. 자금 회수에 난리가 난 은행들은 미국에 대책을 강구하라고 요구했다.
자국 은행들이 망하지 않기 위해 서구 열강들은 이번 기회를 삼아 채무 국가들을 상대로 자금을 추가로 대출해 주면서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국가 부도 방지 지원’을 담보로 하는 ‘글로벌 빚 잔치’‘의 서막이 올랐고, 이런 흐름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모든 현금 흐름과 자산을 부채 상환으로 돌려야 하는 채무 국가들의 상황은 처참하리 만치 가혹해졌다. 의료, 교육, 농업, 식품 등에 들어가는 국가 보조금을 축소해야 했고, 각종 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 보조금을 줄여야 했다. 통신, 에너지, 철도와 같은 현금이 도는 알짜배기 공기업을 매각하는 등 각종 공공자산을 민영화해야 했다.
채권국이 강요하는 구조조정은 긴축 예산 편성, 민영화, 시장 자유화라는 3개의 큰 축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서구 열강은 1960년대 쿠테타를 통해 소수의 독재자를 지원하는 방식에서 ‘국가 채무(빚)를 활용‘하여 ’신자유주의‘를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매커니즘을 가동시켰다.
서구 채권 국가들은 개발도상국의 경제 정책에 대한 통제력을 서서히 장악했고, 국가 통치권 보다 상위에 ‘금융 통제권’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올려놓았다. 웬만한 나라들의 경제 통치권은 국민이 선출한 자국의 정치 시스템에서 워싱턴의 관료들과 뉴욕, 런던의 은행가에게로 넘어갔다.

공급과잉으로 재고가 쌓이고, 기업은 유동성의 위기를 맞고, 임금이 줄어 소비가 줄고, 자금이 남아도는 상태-자본주의의 한계-에 도달하면 부자 투자자들은 자본을 투자할 만한 곳이 줄어드는 상황에 봉착한다.
현금이 남아도는 은행의 금리도 일반적으로 인플레보다 낮기에 그냥 저축을 하면 손해가 나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를 ‘과잉 축적의 위기’라고 하며, 자본은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다.
이 때에 필요한 것은…누군가 나서서 남아도는 자본을 수익성있는 투자처로 보낼 새로운 통로를 찾는 것이다. 이것을 ‘자본의 강철 법칙’이라 한다.
서구 열강 자본이 ‘과잉축적’ 위기를 탈출하는 방법
1) 시간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이다. 즉, 인프라, 교육, 연구 같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이다. 10년 후면 성과가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나 투자자는 이익이 시차를 두고 발생하기에 선뜻 선호하지 않는 방식이다.
2) 기름값을 끌어내려 생산비용을 낮추는 것(이것은 미국의 지속적인 외교 정책 목표이다)과 새로운 노동력을 노동시장에 유입시키거나 기존 노동력의 임금(비용)을 낮추는 것이다.
3) 시장에서 보호받아야 할 공적 영역들을 무너뜨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영국에서 시도했던 철도, 전기, 가스 공급 사업의 민영화, 공공의료서비스를 해체하려는 시도 등이 대표적인다.
4) 투자할 수 있는 새로운 부채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학자금 대출 시장 확대, 신용카드를 상환 능력보다 더 많이 쓰게 하는 것이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서구의 정책 결정자들은 ‘과잉 축적의 위기’를 세계적인 차원에서 ‘공간적’으로 해소하고자 한다. 해외 소비자 시장의 확대, 노동시장, 투자 시장을 새로이 개척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영역이다.

세계은행은 국가에 차관을 제공할 때마다 미국 제품에 대한 수요를 요구한다. 기업들은 단지 싼 노동력이 아니라, 가장 값싼 노동력을 찾아 전 지구를 순회한다. 개발도상국가들은 해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서로 더 낮은 임금으로 경쟁해야 한다. 전 지구적인 ‘바닥으로의 경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민영화 요구에 부응하여 공공자산을 매각하면 서구의 자본은 이전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막대한 자산을 시장에 풀어놓아 새로운 수익 기회를 창출했다. 민영화는 서구의 자본 투자자들에게는 매력적인 기회를 창출해 주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재앙 그 자체로 다가온다.
미국과 유럽의 자본주의는 국가차원에서 채무를 끌어다 쓰게 만든 남반구 국가들이 없었다면 시장포화, 생태적 고갈, 계급 갈등의 한계에 부딫쳐 진즉에 무너졌을 것이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이 미국 정부와 월스트리트에 그토록 소중한 이유이다. 이 2개의 기구는 서구 자본주의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의 영향은 단순히 화폐의 흐름만 바꾼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 국가 권력의 흐름도 바꾸어 놓았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이 제3국의 ‘발전’을 모토로 행한 ‘원조’ 방식의 개입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자국의 정치와 권력을 태평양과 대서양 건너편에서 통제받지 않고, 책임을 지지도 않는 ‘금융 권력’에 경제적 통제권을 통째로 내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번 넘어간 국가 단위의 경제 권력은 웬만해서는 되찾을 수 없다. 국가 단위 채무로 올무처럼 단단히 매여있기 때문이다. 각 국가가 노력하여 생산되는 모든 소득을 서구 열강들이 빌려준 자금의 원금과 이자를 갚는데 오롯이 지불해야 한다.
1980년대 개발국가들은 부채 상환으로 매년 2380억 달러, 2000년에는 연 4400억 달러, 2013년에는 연간 7320억 달러를 지불했다.
중동 국가 레바논의 경우, 전체 예산의 52%를 부채 상환에 지출하고 있다. 이 나라가 의료와 교육에 들어가는 예산을 모두 합해도 전체 국가 예산의 23%에 불과하다.
이처럼 국가 채무는 자국의 발전을 위해 쓸 돈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오늘날 글로벌 빈곤의 궁극적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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