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Divide: A Brief Guide to Global Inequality and Its Solutions>, 제이슨 힉켈 Jason Hickel, William Heinann 2017 (Penguin Random House)
- 김승진 옮김. 홍기빈 해제(제목풀이), 아를 출판사 2024년 7월 초판 발행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의 세상이 잔인한 불평등으로 찢겨 있다는 사실을 목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나라들은 상상조차 안 되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반면 어떤 나라들은 대대적인 박탈을 겪고 있으며, 수십억 명이 영양가 있는 음식이나 깨끗한 물과 같은 기본적인 필수 품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러한 현실이 보이지 않을 수 없을 것 입니다.
이런 불평등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 Page 12
2부 폭력의 역사
1981년 세계은행이 빈곤 인구를 집계하기 시작하기 전까지 세상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생계에 허덕이는 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1500년에서 1800년대까지 약 300년 동안 인류는 유럽과 미국이 주도한 폭력의 역사였고 착취의 역사였다. 그 시작은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쿠바 도착이었다. (그는 당시에 그 곳이 인도 India라고 착각했다)

1500년 이전의 세상은 경제적인 수준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당시 유럽의 기대 수명은 최대 30세에 불과했다. 농경과 수렵을 병행한 중국과 남미 아메리카, 아시아의 기대수명은 약 40세 전후였다. 이런 차이는 1800년대까지 유지되었다.
세상은 1500년대 후반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콜롬버스의 2차 쿠바 도착부터 금과 은을 차지하기 위한 노동력의 착취와 대량학살, 노예 무역이 그 시발점이었다.
1494년에서 1508년까지 불과 14년 사이에 3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유럽인 ‘바르톨로메 라스카사스’가 목격한 ‘제노사이드’에 대한 기록)
쿠바, 멕시코, 페루 잉카 제국, 볼리비아 등이 이 시기에 최대 희생양이 되었다. 금 보다는 은의 채광이 스페인으로 가져간 교역물품의 99%를 차지했다. 1503년부터 1660년 사이에 1600만 킬로그램의 은이 유럽으로 보내졌다.

1800년대까지 유럽으로 유출된 은의 양은 총 1억 킬로그램에 달했다. 오늘날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65조 달러, 2015년 세계 전체 국민총생산의 2배가 넘는 막대한 금액이다.
유럽은 이렇게 거의 무상으로 탈취한 은을 활용하여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과 차, 밀 등 토지 집약적(노동집약적) 생산물을 유럽으로 가져왔다.
유럽은 이 덕분에 농업보다는 기계를 이용한 2차 산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행한 제노사이드(광산에서 금과 은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책임 추궁으로 손목을 잘랐다), 노예로 끌려가고, 광산에서 일하는 동안 수은에 의한 중독, 유럽인들이 전파한 천연두 등 질병으로 인해 1600년대 라틴 아메리카 인구는 350만 명으로 급감했다.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프리카 사람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는 약 300년의 기간 동안 유럽은 승승장구 할 수 있었다. 유럽으로 데려온 원주민을 노예 노동력으로 활용하고, 은과 금 등 거의 공짜로 탈취한 천연자원을 교역을 위한 재원으로 다시 사용한 것이 유럽 국가들이 번성한 최대 원동력이었다.
1834년에 영국이 노예제를 폐지하기 전까지 사탕수수와 면화 농장은 신대륙에서 은에 이어서 또 하나의 황금알을 유럽에 건네주었다. 영국은 뜻하지 않은 풍부한 석탄 광맥을 보유한 국가로서 이런 횡재와 더불어 승승장구했다.
1450년 이전까지 잉글랜드에서는 못사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적당히 주어진 토지에서 소작농을 하면서 나름대로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했다. 군주 혹은 봉건 귀족은 하인들의 생존권을 어느 선까지는 보장했다.
식민지가 개척되면서 모직물이 수입되자, 부유한 귀족들이 자신의 땅을 수익성이 무척 좋은 양떼 목장으로 바꾸는 체계적인 운동을 시작한다. 일꾼들 입장에서는 오랜동안 평화롭게 농사를 짓던 공유지가 갑자기 사유지가 되는 순간이었다.

부유한 귀족들은 농민들의 터전을 무자비하게 밀어버렸고, 자신의 영토에 울타리를 치기 시작했다.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의 시작이다.
저항하는 사람들은 교수형 혹은 사지가 찢어지는 거열형에 처했다. 땅을 딛고 살았던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부랑자가 되었고, 살 곳을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다.
도시에 부랑자 거주촌이 형성되면서 곧바로 이어진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 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반자동 기계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최저 시급을 받는 노동자로 전락되었다.
토지 없는 노동자 계급의 출현, 노동의 강도에 따라 급여를 받는 시스템과 경쟁에서 탈락한 도시 빈민층이 탄생했다.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는 이 시대를 배경으로 쓰여졌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헐값 임금에도 노동자들은 집단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경쟁했다. 이런 와중에 축적되기 시작한 재물을 바라보는 귀족, 상류층들은 이윤 창출의 기본 매커니즘을 포착하고 확대했다.
이로써 값싼 노동력만 제대로 제공되면, 자동으로 부유층 만을 향해 이윤이 자동으로 창출되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인 ‘자본주의’가 탄생했다.
재산(토지)의 사유화, 값싼 노동력, 노동자들이 생활 필수품을 다시 사야하는 소비자 시장의 창출이라는 세가지 요소가 영국 산업혁명의 국내 조건을 만들었다.
이윤 창출을 위한 나라 밖에서의 조건은 아메리카/아프리카 대륙의 식민화와 자원 교역, 그리고 공짜에 가까운 노동력을 제공한 노예(무역)였다.
잉글랜드의 인클로저 시스템은 점점 더 발달하여 이웃 국가였던 아일랜드와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 인도 대륙에 복제되며 이식되는 과정에서 더욱 정교해졌다. 그리고 그 정점은 중국이었다. 당시에 중국은 유럽보다 문명이 더 발달하여 딱히 필요한 물건이 없었다.
인도는 면직물 강국이었고, 중국은 비단 강국이었다. 반면, 영국은 차와 도자기, 비단이 절실이 필요했다. 설상 가상으로 중국은 영국을 상대로 지불 수단으로 은을 요구했다. 다른 것은 대금 지불수단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국가 간의 현격한 경제 수준의 차이는 한쪽이 과도한 지출로 승패가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시에는 영국 등 유럽의 수준이 중국에 비해 형편없이 낮았다. 정면 승부가 어려운 영국은 우회 전략을 택했다.

인도에서 기른 아편을 중국에 밀무역한 것이다. 중국이 반발하자 영국은 해군을 보내 아편전쟁을 유발했고(1839-1842), 프랑스까지 가세한 중국 식민지 작전(1856-1860)은 난징조약을 체결함으로 성공했다.
일반인들은 서구의 열강들이 식민지 시스템 운영하는 동안 피지배 국가를 발전시켰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통계가 보여주는 실상은 정반대이다. 오히려 피지배 국가 덕분에 서구 열강들은 발전할 수 있었다.
India 인도의 1인당 소득은 1757년 동인도 회사가 들어왔을 때부터 1947년 독립까지 식민지배 기간 동안 증가하지 않았다. 인도의 소득은 오히려 50% 이상 줄었다.
같은 기간 동안, 세계 GDP에서 인도와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던 반면,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서 60%로 증가했다. 유럽이 식민지를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식민지가 유럽을 발전시킨 것이다.

한국을 수탈했던 일본의 1910년도 국내총생산액은 35억 달러 선이었다. 한국에 대한 식민 지배가 끝나던 1945년의 일본 국내총생산은 85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Source: Japan’s GDP increased from $3.5 billion in 1910 to $8.5 billion in 1945, showing a substantial growth despite the economic challenges posed by World War II / https://www.nber.org/system/files/working_papers/w23481/w23481.pdf)
아시아를 넘어서 천연자원과 노동력의 공급처로 선정된 마지막 타깃은 아프리카였다. 영국 뿐만 아니라, 벨기에, 포르투갈, 프랑스가 같이 참가했다.
정통 경제이론은 국제적인 무역 질서의 불평등이 처음부터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사를 불러오면 이 이론은 뒤집어진다.
19세기까지 지속된 노예제는 임금의 하락을 유발했다. 식민 지배 국가들은 천연자원의 탈취로 피지배 국가들이 현대 사회 부를 축적할 기반을 원천적으로 제거해 버렸다.
값싼 원자재와 무료에 가까운 노예 노동력으로 만든 제품을 피지배국가 사람들이 다시 소비하도록 경제의 틀을 만든 것은 현재 질 사는 나라들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다.
지구촌 남반구 국가들은 이렇게 북반구 국가들이 의도적으로 만든 인권 폭력, 경제 폭력에 15세기-19세기를 지내왔다. 그리고, 현재는 금융 식민주의 시대가 다시 전개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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