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정의에 관한 탁월한 강의를 하고 있는 ‘마이클 샌덜’의 다른 책! 직역하면 <장점의 포학성: 우리는 공공의 (착한)선을 찾을 수 있을까?> 정도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성공에 필요한 인간의 요인 중 하나인 ‘재능’ 혹은 ‘장점’이, 개인이 성장하는 동안 사회의 도움없이 과연 본인 ‘혼자 만의 노력과 연습’으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이냐?를 생각한다는 것은 사회의 여러 측면을 돌아볼 수 있는 ‘핫 이슈’ 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성취한 부와 권력으로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다양한 답변을 찾아가는 책 입니다.
시선을 좀 더 확대하면 ‘성공과 실패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승자와 패자 관계에서 승자는 덜 성공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개인 차원을 떠나 책임감을 가지고 다루어야 할 사회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을 경우, 사회 엘리트 계층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성공과 재능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면서, 오로지 개인의 성공을 향해 달리고 있는 ‘포학한 현대 사회’를 한 번 돌아보자는 것이 저자의 생각인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은 각자 개인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이 땅에 생존하며, 직업을 구하거나 사업을 하고, 타인과 경쟁하며 성공과 실패의 간극을 오가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선 남들보다 은행계좌에 찍힌 숫자의 자리수가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를 대견해 하기도 하고, 우쭐해 지기도 하고, 타인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이상한 욕망마저 꿈틀대기 시작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도심을 잠시 벗어나, 휴대폰도 터지지 않고, 배터리도 소진되어 버린 산골 오지에서 48시간을 보낸다고 상상을 해 보면, 누군가 나를 데리러 오지 않는 이상에는 걸어내려 올 힘도 남아있지 않은 그 곳에서, 사람들은 자기의 성공이 ‘혼자 만의 재능과 힘으로 거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요?
승자와 패자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영국의 브렉시트(BREXIT)는 단지 자유 무역과 이민자들에 의한 일자리 다툼과 실업에 대한 우려에 기초한 결정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사회 전반에 흐르고 있었던 엘리트 주의에 대한 반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서민들의 축적된 분노가 ‘선거를 빌미로’ 투표 행위에 반영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미국인들의 70퍼센트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소위 ‘아메리칸 드림’ 입니다. (유럽인은 35퍼센트만 그렇게 믿습니다)
2020년대 미국인들은 지난 40년(1980-2020) 동안 진행된 세계 무역자유화, 실시간으로 연동되는 국제금융시스템, 상위층 위주의 시장 친화적 경제시스템의 고착화, 개인간 학력의 격차로 인한 승진하지 못하는 데에 따른 박탈감 등으로 인해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실현 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오랜 시간 분노가 누적된 80%의 중하위층 미국인들은 포풀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언어’를 사용했던 ‘도널드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비슷한 착각 현상으로, 영국의 중하류층 대중들은 이민자들이 몰려들어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 속에서 극우 정치인의 한마디에 현혹되어 거대한 경제공동체인 ‘유럽 연합(European Union)’의 출입문을 박차고 나가자는 공약에 찬성하여 ‘브렉시트(BREXIT)’를 단행했습니다.
미국과 영국 모두 엘리트 계층의 행정가와 정치가들이 지난 40년간(1980-2020) 만들어 버린 불평등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일반 대중들의 분노가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막아버린 결과이기도 합니다.
‘장점에 기반한 능력주의’ 인식에 관한 간단한 역사
사람이면 누구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과 일하고 싶어합니다. 변기가 고장났을 때에 최고 기술자에게 수리를 맡기고, 최고의 치과의사에게 아픈 이빨을 치료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평소 ‘능력주의’를 선호하던 사람도 사회에서 성공하면 성취한 기득권 유지를 위해 신분이 세습되는 ‘귀족주의’를 선호합니다.
반면에, 애초에 귀족같은 신분으로 태어난 상류층 사람은 자신의 부와 성공이 세습이 아닌 ‘능력에 의해 얻은 것’이라는 관점에서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이 지점에서 ‘사회적 불평등’에 관한 대중의 인식은 그렇게 ‘희석’되어 가면서 계층간 갈등은 끊임없이 지속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머슬로(Abraham Harold Maslow, April 1, 1908 – June 8, 1970′)가 1943년에 발표한 그의 연구논문(“A Theory of Human Motivation” in the journal Psychological Review) 에서 주장한 <인간의 욕망 계층도>.
인간은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가 충족되면, 사회적 지위와 명성에 대한 욕구를 갈망하게 된다. 그리고, 이 단계를 지나면 상위 단계인 ‘자아실현‘과 최상위 단계인 ‘사회적으로 (뭔가) 기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마지막으로 실현하려고 합니다. (Source: Wikipidea)
일반 대중들이 사회적으로 ‘가장 심하게 다투는 심리적 영역’은 중간 단계인 ‘존중의 욕구(Esteem Needs: 성취감, 지위 상승, 책임감, 사회적 명성 획득 등에 관한 욕구)’ 입니다.
그 이상의 욕구는 사회적 혹은 집단 심리와는 무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욕구 실현이기 때문에 타인과 경쟁하거나 사회적으로 다툴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중세시대는 ‘신의 은총’이 사상의 중심이 되는 사회였습니다. 문맹률이 현저하게 높았던 당시에, 성경을 문서로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의 성직자 계층이었습니다.
‘성경’이라는 문서로 기록된 내용을 성직자들이 대중에게 전파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왜곡 현상이 발생했으며,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비리는 ‘신의 은총’을 ‘돈의 가치로 환산’하여 대중에게 판매한 ‘면죄부’ 사건 입니다.
종교적 관점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행위도 인간의 본능에서 기인하는 구원(복음)과 연관이 있습니다. 내가 선한 행위를 하면 복을 받는다는 한국의 ‘기복신앙’도 여기에서 뿌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악한 행위를 지속하면 지옥에 가거나 하나님의 벌을 받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종교 개혁을 시도한 마르틴 루터는 성직자들이 면죄부를 파는 -능력주의에 기반한 보상-이라는 ‘치졸한 행위’에 반기를 든 사건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을 시도한 ‘마르틴 루터’의 이론을 승계한 후손들이 주장한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이러니하게도 ‘자유시장’개념으로 변질되어, 어떻게 오늘날 ‘자본주의’ 이론의 기초를 제공하게 되었는 지를 ‘막스 베버’라는 철학자가 그의 책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능력지상주의는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인류역사와 함께 한 사회지배 논리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하나님 위에 ‘건물주’가 존재한다는 시대의 관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능력 지상주의가 잔인한 이유
저자인 마이클은 미국의 대규모 능력주의 실험은 실패했으며 인간의 번영이 진정으로 사회의 목표라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능력주의는 성공은 오로지 자신의 노력의 결과이며, 따라서 성공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우월감이 생기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굴욕감이 생기는 사회가 형성되게 됩니다.



마이클의 주장은 이로 인해 사회의 결속력이 부족해지고, 우리가 공동의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는 능력이 감소했다는 것 입니다.
환경과 행운, 타인과 사회의 도움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으며, 성공한 사람은 존경 내지는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사회에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면서 결국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일종의 폭정이나 부당한 통치로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공정함’
기회의 균등함이란 ‘신분상승’, 혹은 ‘부의 축적’을 위한 ‘과정의 공정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노력은 열심히 하지만 승진도 못하고, 고만고만한 경제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훨씬 더 많습니다.
재산의 많고 적음, 피부색의 차이, 나이의 많고 적음, 회사 임원과 노동자,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모두가 차별없이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존중받으며,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차별받지 않는 환경을 제공하는 사회”!…그런 사회가 바로, 진짜 ‘공정한 사회’ 입니다.
책에서는 그 대표적인 사례(미국)로 의회도서관에 비치된, 수 만권의 책을 읽기 위해 ‘일반 열람실 좌석’에 ’누구나 ‘차별없이 앉아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환경‘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도서관 좌석을 차별하지 않듯이, 사회 각 분야에서 이렇게 동등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대우하는 사회가 ’진짜 공정한, 민주주의 사회‘가 아닐런지요…
가까운 미래에 ’예술의 전당‘ 극장에 앉아서 최고급 뮤지컬을 관람하고 계시는 ‘새벽 청소 노동자’분들의 웃는 모습과 함께, 이런 사회적 환경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한국 사회! 그리고…
이 분들을 위해 ‘비싼 관람비’를 그 동안 ’세금 많이 거둔 국세청에서, 저소득층을 위해 준비한 사회 환급금으로 부담했다‘는 뉴스를 일회성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날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공연하시는 분들도 ’그런 날‘ 만큼은, 보이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멋진 무대’를 그분들에게 제공하지 않을까요…
<Reference>
- “Maslow’s hierarchy of needs“, on Wikipedia.org (Last visit on January 25th, 2024)
- Michael J. Sandel, <THE TYRANNY OF MERIT: CAN WE FIND THE COMMON GOOD?>, First Edition, Picador Paperback 2020 (ISBN: 978-1-250-80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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