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편하게 거절하는 사람마저 존중하는 ‘똘레랑스 (Tolérence)‘ 사회를 꿈꾼다


“왜 인지 모르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략) 나의 이 거지 같은 소심함 때문에 놓치고 산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중략) 나는 도무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오늘도 거절을 못했습니다>의 저자 ‘이지현’ 님은 그 동안 돌덩이처럼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던 주저함, 소극적인 태도, 전전긍긍, 소심함 등 그녀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막고 있던 장애물들을 이 책을 써 나가는 동안 상당히 많이 거두어 낸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제야 비로소 정신적 혹은 심리적으로도 ‘자유롭게 할 말은 하면서 조금 더 주체적으로 삶을 살 수 있는 성숙한 인격체’를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음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지현 지음, <오늘도 거절을 못했습니다>, Book Around 출판 (2023년 9월)
(Image: 인터넷 서점, 알라딘 Aladin 화면 캡처)


공동체 (가족을 시작으로 학교, 첫 직장, 직업 공동체, 취미 단체 등)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삶 속에서 자신의 주관적인 의견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개인적 입장에서 이런 상황이 오래 계속되면 자존감의 상실에 이어 소극적이거나 침묵하는 삶, 심할 경우에는 극도의 우울함을 지나 분노의 삶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규범의 준수, 가족이 우선시 하는 가치와 형제자매 상호 간의 질서 및 태도, 타인과의 관계 형성 과정에서 본능적으로 작동하는 자신의 방어 본능과 공격성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안되요! 혹은 노 No!‘라고 말하는 것을 꺼리게 됩니다.

무엇인가를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 예상되는 보복과 거절에 대한 두려움, 무엇이 정의롭고 정당한 지에 대해 판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안된다고 말했을 경우 공동체 구성원으로부터 부정적인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노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훈련받지 않으면 인식하기 어려운 항목으로 ‘눈에 띄지 않은 물리적 혹은 심리적 경계‘의 가까워짐과 멀어짐의 사이에서 판단의 어려움에 처하거나, 결정하는 것을 포기해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경계의 문제(Boundary Issues in Psychology)‘에 처할 경우에도 ‘노 No!’라고 말하지 못할 가능성은 무척 높아집니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직감으로 알고는 있으나 그 감각을 신뢰할 수 없는 상태로 인해 ‘아니오!’ 라는 말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사회 공동체에서 혼자가 되거나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개인의 가치관 혹은 타고난 성격으로 인해 타인의 눈에 띄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직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미리 짐작하거나 가상하여 판단하는 경우에도 타인을 향해 선뜻 ‘아니요 혹은 안되요!’라는 발언을 하지 못합니다.

위의 모든 상황들은 사람의 타고난 개성과 진실성, 즉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진정한 필요와 욕구, 기쁨과 두려움, 열정과 신념…등 타인과 구별되는 진정한 자아 또는 온전한 정신적 충만감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데 강력한 방해물이 됩니다.

상황에 맞추어서 적절하게 “아니요”라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일과 삶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 생존하고, 자신을 발전시키고 번영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독서 ‘Reading’ (Image Source: Unsplash)


저자는 사람을 사귀는데 관심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독자인 내가 보기에는 마음 속에서는 그 누구보다 사람을 찾고 있음을 글 전체를 통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좋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지…그 방법을 몰라서 마음 속에 내재된 두려움이 행동 혹은 말하기를 주저하는 상태로 나타났을 뿐 입니다.

거절하는 방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동생이랑 유럽 갔다 와!“라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감히 거절도 못하고 숙제 하듯 떠난 한 달 간의 여행이 어쩌면 이 책을 쓸 수 있기까지 삶의 변화를 초래한 ‘전환점(Turning Point)’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가족 어른의 말에 거절 못하고 도착한 생애 첫 해외 여행지에서 저자는 횡단보도에서 무조건 정지해 주는 런던의 차들을 보면서 배려심이 넘치는 공동체가 존재함을 몸소 경험합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런던에서는 서로 서로 배려하는 일상의 문화가 전달해 주는 심리적인 안정감 속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체득했을 것 입니다.

속도의 한계 없이 달려도 되는 독일의 아우토반 (Autobahn)과 거리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보면서, 저자는 강요된 통제 없이도 사람은 얼마든지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스스로 자유롭게 살 수 있음을 느끼지 않았을까 합니다.

저자가 마음 속으로 희망하는 공동체의 모습은, 굳이 본인이 나서서 먼저 말하지 않아도 자신을 배려해 주는 따끗한 사회(*홍대에 있던 어떤 다방에 얽힌 에피소드), 그리고 개인적으로 피아노(음악)와 꽃을 좋아하듯이 감수성과 창의력이 넘치고, 관용과 여유가 좀 더 있는 공동체를 찾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심난한 사람은 음악과 꽃이 주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경쟁 만 치열한 공동체에는 배려하는 마음이 싹을 띄울 수 있는 심리적 여유 공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원하는 공동체와 이상적인 관계의 모습은 저자 스스로 ‘가장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 있다’고 말하듯이 파리의 한 공원에서 보았던 자유롭고, 여유로운 – 좀 더 정확히는 내가 무엇을 하든 간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 혹은 존중할 줄 아는 – 관용이 있는 사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원하는 미래의 자신은 (그렇게 타인을 배려하는 공동체 안에서) 자유롭게 표현하고 행동할 줄 아는 ‘파리지엔(Parisienne, ‘파리에 사는 여자’라는 뜻)’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를 존중’할 줄 아는 ‘이성(Reason)’을 의미하는 ‘똘레랑스(Tolérence)‘가 실제의 삶 속에 존재하는 공동체를 찾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눈치 안 보고 고백하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라는 표현 속에서 저자가 살고 싶은 세상과 마음 편하게 표현하고 행동하고 싶은 미래의 모습을 잠시 나마 읽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가까운 미래에 우아함과 고상함, 똘레랑스를갖춘 품격이 있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은 솔직하게 나서서 ”제 꿈은 작가이고요, 어리둥절 초대박 나서 떼돈 벌고 싶어요“ 라고 용기를 내어 말할 줄 아는 약간의 ‘뻔뻔함’도 이제는 생겼습니다. 보기가 참 좋습니다.

비록, 아직도 피아노 연주회에 나가면 어쩔 수 없는 긴장감 때문에 엉망진창이지만 처음 피아노를 마주했을 때의 악보를 다시금 보면서 자신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스스로 뿌듯할 줄 아는 내면의 건강함까지도 갖추었습니다.

‘거절을 못했던 오늘’과 달리, 내일부터는 남의 삶에 들러리 서지 않고,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개의치 않고, 오롯이 나를 위해, 해야 할 말은 하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고 싶은 작가의 확 달라진 삶의 자세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자료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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