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리터러시 China Literacy: 한국은 2020’s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


두려움과 부러움 사이에서 발견한 새로움

중국 내의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인구 1천만 명-2천만 명 이상의 가장 앞선 ‘1선 도시(한국의 특별시 정도의 개념)’ 거주 엘리트들의 여론과 중국 정부의 용인없이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않는다.

2선 도시는 인구 1천만 명 이하 도시(한국의 광역시도에 해당), 3선 도시(한국의 시군구에 해당)는 농촌을 포함한 소도시를 의미한다. 중국의 사회 구성 계층을 구분하기 위한 저자의 개념이다.

중국을 앞으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중국 인류학 개척자인 페이샤오퉁은 ‘중화민족 다원일체론’을 주장한다. 여러 개의 종족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하나로 합쳐져서 현재의 중화민족을 구성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또 다른 학자 샹바오는 ‘여러 개의 철판을 쇠사슬로 단단히 묶어’ 놓은 시스템이 중국이라고 주장한다.

샹바오는 거창한 국가 혹은 거대한 도시 보다는 소도시에서 지식인으로 활동하는 현대적 ‘향신’을 중국의 미래 지식인 모델로 제시한다. 이탈리아 정치인 ‘안토니오 그람시’의 이론(노동계급이 어떻게 적대세력인 지배계급에 편입되는 지를 연구함)에 좌파 사상을 결합시킨 개념이다.

현대의 중국은 통일된 국가 운영을 위해 정치 상층부의 구조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감당 가능할 정도의 규모의 경제를 발전시키면서도 도시와 농촌의 균형발전을 추구해야 하는 거대한 체제이다.

한마디로 그렇게 간단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여전히 티벳 자치구에서는 ‘중화민족’의 정체성에 반하는 자치 독립을 주장하는 등 국가 정체성 정립 문제가 발생한다.

약 10년 후면 중국은 미국과 대등한 혹은 앞서는 거대한 경제 공동체로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하며, 중국인들 역시 G2국가 국민으로서 활동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은 여러 면에서 유럽과 미국을 모두 합쳐 놓은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이라는 나라와는 언제든 맞짱을 뜨려는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유럽 연합 혹은 미국을 단일 국가로 놓고 비교하지는 않는다.


중국을 경계하는 한국인의 진짜 속내

중국 전역에서 성장 중인 687개의 도시를 조금이나마 들여다 보고, 현지 경험을 해 본 사람은 극소수일텐데, 중국을 평가하는 행동을 보면 앉아서 천리를 보듯 모두가 ‘중국 달인’처럼 행동한다.

2033년쯤이면 미국 못지 않은 경제력, 기술력을 갖춘 중국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한국인 만의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한국인 입장에서는 중국도 가까운 미래에 자국에 이익이 안되면 반도체 해외투자를 반대하는 2023년의 미국처럼 한국에 규제를 가하거나, 경제적으로 옥죄어 오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설 수도 있다. 사드의 한국 배치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는 한한령을 경험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오늘날의 미국 위치가 되면 중국도 해외 물품을 수입해서 내수와 수입품의 균형을 맞추어야 할 수 밖에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아무리 중국 정부가 애국주의를 강조해도 아이폰을 즐겨쓰는 중류층의 중국인은 계속해서 그걸 사용하듯 14억 인구의 소비패턴까지 통제하기는 어렵다. 이 분야는 이념도 아니고, 문화도 아니고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중국을 하나의 커다란 통으로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자. 할 수도 없는 무모한 일이고, 통으로 이해한다고 한들, 오해만 축적될 뿐이고 현실에서 얻는 실익이 거의 없다.


중국과 함께 살아 갈 슬기로운 방법

중국 지도를 마음 속에 펼치고, 마음에 가는 도시 하나를 찍어보자. 인터넷도 뒤져보고 특정 도시 하나를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가상 여행을 해 보자.

중국으로 실제로 여행을 간다면 베이징, 상하이가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나 만의 중국 도시’를 탐험하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과 잠시라도 사귀어 보자.

아마도 그들 역시 나를 무척 반길 줄 모른다. 그 도시에 찾아온 한국인은 어쩌면 ‘내가 처음’일 수도 있으니까…

정우성 배우가 중국 ‘청도’(쓰촨성)에서 촬영한 영화 ‘호우시절 好雨时节‘ (뜻: 비를 좋아하는 시절) (Image: themoviedb.org)

정우성이란 유명 배우는 작품을 따라서 의도치 않게 베이징, 상하이가 아닌, 다소 생소한 중국 도시에서 아주 오래 전에 영화 촬영을 했다. 그는 아마도 2009년에 중국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았을 것이다.

중국에서 인구가 네번째로 많은(1658만 명) 도시가 ‘청두’시란 곳이고, 그 곳에는 비록 세세하게 설명은 못하지만, 그 지역 만의 독특한 특색이 있었다는 것을…

나 역시 주어진 환경에 따라 평범한 일상의 서사를 매일 써 나가는 ‘삶 속의 주연’이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오롯이 나 만의 여정이다. 힘겨운 삶의 여정 속에 나와 정신적으로 언제든 동행해 주는 친구가 ‘부근’에 있다면 조금은 수월할 것이다.

친구가 나와 동행을 결심하게 하려면 내가 먼저 나서서 그에 대해서 좀 더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의 가치관과 삶의 철학을 온전히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그 또한 나를 ‘자기와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라는 믿음을 가질 것이다.

나에게 그 친구는 나보다 덩치도 훨씬 크고, 수 많은 다민족과 생활해 온 영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훨씬 넓다. 그는 바로 나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는 ‘중국(사람)’이다.

두려움이 생길 만한 상상 속 괴물 같은 ‘따꺼(大哥)’는 절대 아니다. 한국인이 사용하는 비속어인 ‘짱께*‘라고 함부로 부를 만큼 그의 갖춘 면모는 그리 간단치 않다.


의미도 모르고 사용 중인 ‘짱께’ 호칭의 패러독스

(*) ‘짱께’는 중국어 掌柜 zhanggui ‘장꾸이’가 한국 사람들 귀에 와전되면서 고착된 소리이다. 원래의 뜻은 ‘사업장에서 (나무로 만든) 궤짝을 장악한 사람’을 의미한다.

‘돈이 든 나무 궤짝’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이므로, 금고지기이면서 ‘실권자 중 실권자’를 의미한다. 오늘날로 치면 사장님 혹은 최고재무책임자(CFO)에 해당한다. (운영자 해석)

한국인이 특정 중국인을 비하하려는 의도로 ‘짱께! 짱께!’라고 의미도 모른 채 부르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그를 ’사장님! 사장님!‘ 이라고 극도로 존칭하는 형국이 된다.

부르기 좋은 이름을 놓아두고 굳이 그렇게 행동할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리뷰를 마무리하며…

개인적으로 평소 생각하던 중국에 대한 나의 관점과 비슷한 방향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지내온 저자를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무척 행복하다.

평소 발췌독을 주로 하는 습관이었는데, 이 책 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했다. 문장 하나하나가 중국의 인문학 지식의 향연이라 할 정도로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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