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리터러시 China Literacy: 한국은 2020’s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


도그마(Dogma: 신념) 너머의 중국과 한국을 만나다

중국인과 한국인의 갈등 이유와 속마음

프랑스어 ‘르상티망’, 영어 Resentment는 가슴 깊숙이 자리잡은 ‘원한’을 의미한다. 신분상으로 넘사벽이었던 봉건 시대의 ’노예’가 영주에게 품었던 분노가 오랜시간 누적된 감정에 해당한다. 니체는 이것을 ‘주인에 대한 노예의 감정‘이라고 설명했다.

넘사벽의 영토와 인구, 바꿀 수 없는 지정학적 위치와 같은 숙명 속에서 압도적으로 군림하는…떠오르는 강자인 중국을 향한 공포감과 부러움이 뒤섞인 중화 민족주의, 중화 중심주의에 대한 한국인의 반항 감정이 있다.

인구 세계 1위-2위, 영토 크기 세계 4위의 나라, 중국 (Image: Unsplash)

반면, 중국인이 보기에 한국이라는 나라는 한나라 이후에는 (한반도에 4군 설치) 중화 왕조 국가에 복속되지 않은 독립국가, 독립적이면서도 유교 등 중국의 문화를 체화하고 응용한다.

변방의 작은 나라가 나로호 같은 우주위성 발사체를 단 3번의 시도끝에 성공하고, 자신들은 이루지 못한 드라마와 영화, 노래 등 K-문화의 세계화를 주도하는 것이 부러우면서도 껄끄럽다.

한국인, 중국인 양쪽 모두 문화적 우월감과 부러움이 상호 충돌한다. 여러 면에서 덩치는 비록 작지만 할 것은 다 한다는 한국인과 미국과 맞짱을 뜰 정도로 강대국이 되었다는 중국인의 자부심이 감정적으로 대결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놓고 치열한 경쟁상태로 진행한 상태이다.

혐중 혹은 차이나 포비아, 한한령 등 양국 정부와 시민을 비난하거나 혐오하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공정한 처사가 아니다. 이런 상호 태도는 외부인들의 공격에 대해 방어기제를 발동시켜 각자 스스로 생각하고 반성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한국 청년들의 ‘중국 혐오’ 감정의 뿌리는 어디에서 싹튼 것일까? 공산당 등 이념주의에 구애받지 않는 현실주의자라면, 이들의 감정은 ‘한국의 미래 밥그릇’을 강탈해 갈 잠재적 거대 국가인 중국에 대한 ‘공포심’에서 기인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한복, 김치, 쇼트트랙에 대한 논쟁 역시 현실적으로는 실이익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이유 또한 미래의 경제적 이익 충돌에 대한 내재된 공포감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한국인들이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감정은 잠시 뒤로 접어놓고 중국을 거대한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전략이다. 국제외교에서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중립 외교 상태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와 병행하여 인도, 베트남처럼 중립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동남아 국가들과의 연대도 반드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중국을 미래 먹거리를 창출해 주는 ‘플랫폼’으로 여기고 이를 슬기롭게 이용하는 참여자로 스스로를 포지셔닝 해야 한다.

여기에는 한국에서만 상상하는 탁상 머리가 아닌, 중국 현지에 직접 진출해서 앞으로도 상당기간 풀리지 않을 한한령을 중국 현지에서 극복하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도 좋다.


중국과 아등바등 할 필요는 없다

주변 국가보다 우월하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방식의 사고는 중국과 한국 양쪽 모두에게 괜한 에너지만 낭비할 뿐이다. 아예 문을 닫고 앞으로는 상종을 하지 말자는 쇄국주의 방식도 옳지 않다.

현대의 지구촌 경제는 분야를 막론하고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천연자원, 식량자원의 자급자족이 불가하고 자체 인구 만으로는 경제가 안돌아가는 한국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거대한 이웃국가와 경쟁하여 기어이 1등을 하기 보다는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자신만의 만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다.

모두가 동시에 성장하는 시대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 국가든 개인이든 어차피 1등은 한 명 뿐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 만의 의미 추구와 행복한 서사가 가능해야 한다.

중국의 학자 샹바오는 “매일 충실히 생활하며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보통 사람이 영웅” 이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둘러싼 ‘부근’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사회학자 조형근은 그의 책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에서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의 처지에 맞게 노력하는 민중의 임기응변적이고 창의적인 행위를 ‘브리콜뢰르bricoleur’라고 표현한다.

샹바오는 그러나, 플랫폼 비즈니스의 발달과 유동성 증가로 ‘부근’이 급속하게 사라짐을 안타까워 한다.

내 문제를 놓고 직접 소통이 가능한 ‘부근’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판단의 기준을 구름 위의 존재에 둔다. 특정 사회 영웅이 제시하는 초월적인 도덕과 정의에 사로잡힌다.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구호가 난무하지만, 내 삶의 직접적인 문제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한국과 중국, 사회 비판 방법의 차이

중국인의 사회 갈등 표출은 먼저 탈정치화 된 영역에서 나타난다. 인터넷 상에서 갑론을박을 벌이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다 어느 선을 넘어가면 중국 정부가 개입해서 차단하다.

한발 더 나아가면, 중국 정부 초기에는 경제발전이 시급해서 대도시와 연안 중심 발전론이 더 큰 목소리를 냈었다.

그러나, 시진핑 집권 후에는 농민과 농촌을 중심으로 10억 인구 계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기득권의 부패를 척결하면서 내건 ‘공동 부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한국은 사회적 갈등과 파생된 감정을 노골적으로 정치 현장과 공론의 장에서 드러내고, 대중매체와 예술을 활용하여 계층간 증오와 격렬한 투쟁을 극화해서 표현한다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 포스터 (Image: themoviedb.org)

중국은 이런 자유로운 표현을 용납하지 않는다. 중국이 한국을 무척 부러워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유명 영화평론가인 베이징 대학교의 다이진화 戴锦华 교수는 그래서 영화기생충 절망적인 한국 현실을 용감하게 직시하는 영화라고 칭찬한다.

한국과 달리 중국인들은 공산당을 단순한 정당이 아니라 정부 혹은 국가로 간주한다. 그리고 당의 간부들은 모두 엘리트 계층이다. 당의 엘리트들이 현재의 강대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며 지지한다.

특히, 10억의 향촌(지역 기반의 소도시와 농촌) 인구 역시 전통주의 성향이라 당을 지지하는 보수 중도층이다. 중국 대다수 사람들의 이런 정치적 성향을 감안하면 중국의 정치체제가 서구의 민주주의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배경이자 이유이다.

겉으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술과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사회를 지탱하는 가치관은 예전과 동일하게 도도하면서도 탄탄히 흐르고 있는 거대한 사회 공동체가 중국이란 점을 한국인들은 주의깊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산당은 민주적이지 않으니 중국서구 사회처럼 하루 빨리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극히 한국인 관점에서 제기하는 성급한 담론은 중국의 속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위험한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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