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uotes 인용구 모음
서양에서 ‘자연’과 ‘사회’라는 용어에 대한 의미는 제국주의가 확장되던 시기 중간에 해당되던 1550년 대 이후에 부여되었다. 그 이전에는 딱히 자연과 사회를 분리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1880년대 이전까지 유럽은 중국에 비해 기술과 문화 면에서 모두 뒤쳐져 있었다. 중국은 그 당시 인쇄물, 화약, 강력한 해군과 번성한 도시를 갖추었다. 식민 제국들이 중국이 있는 동쪽으로 이동하게 된 결정적 이유이다.
Cheap Nature, page 46
자연은 싸게 취급할 어떤 물건이 아니라, 생명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Nature is not the thing but a way of organizing – and cheapening – life.
Cheap Nature, page 47
식민지 개척이 한창이던 16세기, 백인들에 의해 점령당한 땅에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들은 단지 ‘그 곳에 있었다’는 이유 만으로 노예가 되었고, 백인들에게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백인의 관점에서는 원주민이었던 – 피부색에 상관없이 – 모든 사람들(특히 여성도 포함)은 자연에서 얻은 ‘무상 자원’으로 생각되었다
그 후 (무상 노동 강요에 대해) 노예들의 저항이 생기자, 자본가들은 지속적인 상품의 생산과 체재 유지를 위해 소정의 보상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임금 노동 계약’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Cheap Nature, page 51
달러(Dollar)와 복권 (Lottery)의 탄생
은과 구리가 풍부했던 오늘날의 보헤미아와 독일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Erzgebirge (Ore Mountains)’에서 현대의 화폐인 ‘달러’라는 용어 탄생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달러’라는 용어는 은과 구리 채광의 최고의 붐이 일었던 체코에 위치한 ‘야치모프 Jachymov’ 광산에서 생산되던 ‘은으로 만든 커다란 동전’을 ‘탈러스(Thalers)’ 라고 불렀다. 이 단어가 오늘날 ‘달러 Dollars’라는 발음으로 표기되는 화폐의 이름이다. (Indeed, the word dollar comes from the minted coins-thalers-of Joachimsthal(now Jachymov), the era’s greatest boomtown.)
Cheap Money, page 72
유럽에서 은 Silver 생산이 활발해지면서 교역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채굴한 광물에서 은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수 많은 나무가 땔감으로 사용되어 숲이 황폐화되었다. 은을 세척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물은 독극물을 함유하여 물고기를 몰살시켰다.
당시 유럽에는 10만 명의 광산 노동자가 채굴 작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낮은 임금과 차별, 학대로 인로 그들의 불만은 갈수록 증가되었다. 결국, 독일에서 1525년에 대규모 농민 전쟁 사태(German Pesant’s War, 1525)가 발생했다.
16세기 이전까지는 농부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유럽 지역 산림은 황폐화되지 않았다. 식민지 지배와 자원약탈이 시작된 이후 유럽은 심각한 자연 훼손 현상을 겪기 시작한다.
1417년 이탈리아 6대 도시 증 하나인 Genoa에서 복권 시스템이 최초로 출현했다. 지배층은 식민지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상인들로부터 조달받았는데, 빛을 갚을 수 없게 되자 이를 상환하기 위해 일반인들을 상대로 복권을 발행하여 충당했다. 1등 당첨금은 당시 10명의 지방관 1년치 연봉 총액과 동일했다.
17세기 초에 스페인은 식민지 확장을 위한 영토 전쟁에 예산의 2/3를 쏟아부은 것이 원인이 되어 채무 국가로 전락했고 유럽 파워 게임에서 중간 순위 국가로 내려앉았다.
반면, 제조업 기반의 상업 경제와 자본을 가지고 있었던 네덜란드 공화국은 무기를 제조 및 공급하면서 얻는 자본을 기반으로 17세기에 유럽 초강대국이 되었다. 자본력이 군사력을 압도하는 시대를 네덜란드가 열었다.
1571년, 필리핀에 새로운 항구 도시 ‘마닐라’가 건설되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진정한 글로벌 무역이 시작된 연도로 이 해를 지목한다. 스페인의 은이 이곳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자본이 되었다. 유럽-아시아-아메리카를 연결하는 중간 기착지가 필리핀 마닐라였다. (같은 시기, 1540-1560년대에는 일본에서 생산된 은이 당시 문명의 중심이던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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