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신동원
- 책 제목: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부제: 하늘.땅.자연.몸에 관한 2천 년의 합리적 지혜
- 출판사: 책과 함께
- 총 페이지수: 878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겉표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국가가 아니라 문명을 역사 연구의 기본 단위로 보면서 세계의 문명권을 21개로 나누었습니다. 그는 한국 문명을 중국 문명이나 일본 문명과 다른 독자적인 문명으로 설정했습니다. 한국 문명은 현재까지 살아남은 15개 문명 중 하나입니다. (한국 문명이) 이토록 오래 지속된 비결은 무엇일까요?
저자의 머리말 중에서. P17
옛날의 왕은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장악한 막강한 권력자였다. 왕의 권력을 하늘로부터 받았다는 천명사상은 필연적으로 천문학의 발달을 자연스레 촉진했다. 천문학을 그래서 제왕학이라 한다.
청동기 시대 고인돌, 오늘날 기상청에 수퍼 컴퓨터를 설치하는 것과 같은 일로 추정되는 ‘별을 바라보는 특별한 장소’라는 뜻의 신라시대 첨성대, 우리나라에서 관측 가능한 북반구 하늘의 별자리를 모두 기록한 ‘하늘의 모습을 차례로 늘어놓고, 그 하늘 아래 땅을 배당한 그림‘ 이라는 뜻의 ’천상열차분야지도’, 장영실의 자격루(보루각루와 흠경각루)와 해시계인 앙부일구, 낮과 밤을 모두 알려준 시계인 일성정시의, 혼천의, 그리고 강우량 계산용 측우기 등등…
조선 천문학의 대혁신을 주도한 세종, <칠정산> 역법을 연구한 이순지, 각종 기구를 만든 장영실과 이천. 조선후기 지전설을 주장한 홍대용. 우주의 비밀을 캐고자 마방진, 방정식인 ‘천원술’을 연구한 1600년대의 수학자 ‘최석정’이 하늘을 연구한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475년 역사의 고려. 천체의 움직임을 기록한 <천문지>에 실린 기록이 수 천개나 된다. 1073년에 기록된 초신성(별똥별) 폭발 현상은 세상에서 오직 중국과 고려만이 기록으로 남겼다. 현대의 한국 천문학자들은 이것이 ‘아르 아쿠아리’라고 불리는 신성임을 확인했다.
고려시대에 일식은 138번이나 기록되어 있다. 1151년에 처음 기록된 태양 흑점에 관한 기록은 42번 나온다. 이는 1610년 망원경을 만들어 흑점을 바라본 유럽의 갈릴레오의 기록보다 450년 앞선 기록이다.
1151년 3월부터 1278년 8월 사이에 8-20년 마다 흑점이 관찰되고 있다. 현대 천문학에서 말하는 태양 흑점의 평균 주기인 7.3년-17.1년과 거의 일치한다. 꾸준한 기록의 위력이다. 그 외 월식 211, 혜성 76번, 낮에 출현한 별 168번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 475년 동안 기록된 천문학 관측 기록은 그 자체로 세상에 내 놓을 대단한 자랑거리다. 중국보다 더 오랫동안 관측하고 기록도 많이 남겼다.
고려사에는 기상이변들은 따로 모아 <오행지>에 모아 놓았다. <천문지>와 함께 고려 500년 동안 벌어진 우주와 자연현상 기록 저장장치를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186번의 가뭄이 발생했고, 1002년 6월 우리나라 최초의 화산 폭발 기록인 ‘제주도 화산’ 폭발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1597년, 1668년, 1702년에 백두산에서 3차례 작은 화산 폭발 기록). 지진은 84번 발생했다. 조선시대에는 490차례 발생했다. 한반도가 결코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선조들이 기록으로 알려주고 있다.
지구 북반구 별자리 293개, 1467개 별이 그려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이 세운지 불과 3년 후인 1395년에 만들었다. 하늘을 그린 천문도가 고려왕조를 계승한 조선초 왕의 위엄을 나타내기에 더없이 좋았다고 추정된다.
서울 기준의 천문학을 이루다) 서울 기준 표준시의 발견, 이를 위한 각종 천문 측정기구의 발명, 천문 관찰과 측정을 통해 얻은 결과를 계산하는 어려운 수학의 발달이 세종 집권 시기에 모두 이루어졌다. 세종대왕은 아래의 선수들을 발굴하고, 기량을 발휘하게 유도한 최종 감독이었다.
축구에 비교하자면 정초, 정흠지, 정인지 선수가 공을 뻥차서 주니(천문에 대한 고서적 조사, 학습 및 관측기구 제작에 도움), 이천과 장영실 선수가 받아 질주하고(앙부일귀, 자격루 등 각종 기구 발명), <칠정산>의 공동 저자인 김담 선수가 공을 넘겨 받아, 이순지에게 어시스트. 이순지가 최종 슛 마무리 및 골인(중국을 벗어난 한국 자체의 달력 계산을 위한 칠정산, 별의 내용을 정리한 천문유초, 학자들의 천문 학술서를 집대성한 제가역상집을 완성).
그저 간단한 통으로 보이는 ‘조선시대 측우기가 대단한 이유’는, 1)지름이 20센티미터로 현대 측우기와 오차가 3센티미터 밖에 나지 않는다는 점, 2)무려 200년 동안 매일 기록한 강우량 기록은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대기록이라는 점, 3)서양에서는 1639년 이탈리아 카스텔리 라는 사람이 최초로 측우기를 만들었으나 우리는 1441년에 이미 측우기를 만들고, 기록하고 있었으니 무려 198년을 앞서고 있었다는 점이다.
1441년 세종 대왕은 정확한 시계, 무엇보다 자동 시계를 만들라 장영실에게 명령한다. 3년 후 장영실은 세계 최초 자동으로 시간을 알리는 자명종 물시계인 자격루를 완성한다. 밤에도 12지신 모양의 인형이 자동으로 튀어나와 시간을 알려주었다. 낮에는 종소리로, 밤에는 북소리로 시간을 알렸다.
밤의 길이를 해 지는 시각에서 (일몰 직후), 해 뜨는 시각(일출 직전)으로 매일 달라지게 적용하고, 중국 시간이 아닌 ‘조선의 시간에 최적화 된 자격루’는 지속성도 대단했다. 50년 동안 큰 탈없이 정확히 작동했다. 기계 재료, 치수의 정확성, 기계 부품의 이음새 등이 정교해야 가능한 일이다.
‘솥 안쪽을 닮은 해 그림자 혹은 해시계’라는 뜻의 앙부일귀. 7개의 세로선은 그림자가 생기는 오전 5시부터 오후 7시까지의 시간을 표시했고, 13줄의 가로선은 24절기를 표기했다. 선조들은 현명하게도 1년을 6개월로 나누어 동지와 하지를 기준으로 시간이 역전된다고 생각했다.
앙부일귀를 읽을 줄 안다는 것은 하루의 시간 뿐만 아니라, 24절기인 계절의 변화까지 알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로 치면, 월/일/시간(오전 혹은 오후)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의 한국인이 보기에도 기가막힌 사실은…앙부일구 중앙에 있는 그림자 표시 바늘이 솥 밑바닥으로부터 딱 ‘서울의 위도’만큼 정확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점이다. 세종 시절 기준으로 37도 20분인데, 오늘날로 환산하면 37도 39분 15초이다. 선조들은 당시에 어떻게 위도와 경도까지 정확히 알고, 그 차이를 반영한 기울기를 해시계에 반영했을까?
한국의 사극 드라마나 사극 영화에서 ‘촌각을 다투는 급한 일이네!!’ 라고 말할 때, ‘촌각’은 오늘날 몇 분에 해당할까? 정답은 15분이다. 조선시대에 하루 시간은 12시진으로, 1각은 지금의 15분, 1일을 96각으로 맞추어 표시했다. 2시간에 해당하는 1시진은 8각이 된다. (앙부일구 시간선 사이가 8칸씩 나뉘어 있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당시에 시간을 15분 단위까지로 구분하여 생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1시진은 2시간이었고, 시진은 다시 ‘초’와 ‘정’ 두가지로 구분했으니 사실상 24시 표기 체제였다. ‘자축인묘진사오미’ 12지신을 그대로 1시진으로 표시했고, 기준 시간은 ‘자시’를 표기하는 밤 11시었다.
우리가 통상 밤 12시를 아직도 ‘자정‘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조들도 밤 11시는 자초, 밤 12시는 자정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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