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 때는 ‘일에 미쳐’ 살았다. 오전 6시 30분 정도면 사무실에 도착했고, 밤 10시 넘어서 퇴근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다. 스스로 알아서 자발적으로, 일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그렇게 행동했다.

조직 내부에서 일을 통해 혼자만 느낄 수 있는 어줍짢은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 몇 년 동안은 좋았다. 그렇게 15년을 생활하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 나를 잃어버렸고, 몸이 먼저 조난 신호를 보내왔다.

출근하기 힘들 정도의 피로감,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무기력감과 우울하다는 느낌과 삶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허무한 감정들은 조직생활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어떻게 든 간에 숨을 좀 편하게 쉬며 살고 싶었다. 나는 결국 사직서를 미련없이 제출했다.

번 아웃(burnout)이 처음 미국에서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1970년대 각각 독립적인 연구를 수행하던 심리학자 두 명이 무료 클리닉 봉사자, 국선변호인, 상담사 등 이상주의를 지닌 노동자들이 앓는 새로운 질병에 관한 연구를 비슷한 시기에 발표했을 때다.

Photo by Conscious Design (Image source on Unsplash)

번아웃(burnout)은 미국인의 노동방식이 한층 치열한 동시에 한층 불안정한 방식으로 극적으로 변화하던 결정적 시기에 나타났다. (중략)

번아웃 문화는 일의 환경과 일에 대한 사회적 이상 사이의 간극이 벌어진 결과다. (중략) 번아웃 문화는 노동자의 인간성을 존중하지 못한 윤리적 실패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일에 몰입하면 급여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사회적 존엄성, 도덕적 성품, 영적 목적의식을 얻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거짓 약속이다.

실제로 몰입은 인간의 활동에서 일을 가장 높은 위치에 두어 (인간의) 존엄성, 인격, 영적 포부의 중요성을 깎아내리는 환경인 ‘총체적 노동(total work)‘을 유발한다.

우리의 노동 윤리는 이상을 위해 번아웃을 기꺼이 감수하는 순교자의 자세를 궁극적 미덕으로 삼는다. 하지만 희생으로부터 실제 이득을 얻는 것은 ‘고용주’다. (중략)

번아웃은 조직 사회의 현실과 우리의 이상 사이의 모순에서 발생하는 한편, 일터에서 만들어지는 건강하지 못한 대인관계의 산물이기도 하다.

결국, 번아웃은 궁극적으로 상대방의 인격적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은 결과물이다.

조나단 말레식 지음. 송섬별 옮김. <번아웃의 종말(The End of Burnout)>. p24, 2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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